8월 19일 2021년 목요일 묵상
- Hyung Yun
- 2021년 8월 19일
- 2분 분량
본문: 시편 64편 1~10절
1. 시편을 읽으며, 너무 잘 아는 단어, 많이 들어본 단어, 그래서 진정한 뜻을 간과하기 쉬운 단어인 ‘묵상(默想, Meditation)’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습니다.
한자는 ‘잠잠할 묵(默)’에 ‘생각할 상(想)’자를 썼습니다. ‘잠잠하게 생각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사람의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말씀을 영혼 깊이 새겨 넣는 것’이 묵상입니다.
그리고, 묵상(Meditation)의 또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Meditation의 어원은 헬라어 ‘Medikelos’에서 왔다고 합니다. 영어의 ‘약(Medicine)’과 같은 어원입니다.
즉, 하나님 말씀(성경)으로 묵상(Medikelos)한다는 것은 병들고, 지치고, 상한 영혼에 약을 투여하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살리시고 치유하시는 능력이 우리 심령에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하나님 말씀)을 먹으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하나님 말씀)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는 ‘에스겔 3장 1~3절’의 말씀이 ‘묵상’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2. 오늘 시편 64편의 말씀을 그냥 책 읽듯 읽으면 각자 생각대로 판단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 내 생각의 옳음, 내 상황에 유리한대로 적용하고 끝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저는 자기 생각과 자아의 기준에 기울어진 존재입니다. 십자가에, 하나님 말씀에 붙들리지 않으면 쓰러지는 존재입니다.’라는 간절함으로 몇 번이고 묵상해보십시오.
시편 64편은 다윗이 단순하게 ‘사울’ 혹은 ‘하나님의 사람(의인)을 대적하고 비방하는 세력’에 대한 보복을 요청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1절의 “원수의 두려움”을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이 내용을 보았을 때 바로 떠오르는 ‘사울’, 그렇게 내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현실의 삶에서 나를 공격하는 어떤 대상, 사건, 인물 등’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배후에서 그들을 조종하는 ‘사탄 마귀’를 떠올리게 됩니다. (이것도 맞습니다. 틀렸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가 묵상해보십시오. 앞에 설명 드린 ‘묵상’의 깊은 의미… 내 영혼에 하나님 말씀이 퍼져 나를 회복시킨다는 마음으로 묵상해보십시오.
‘원수가 주는 두려움’보다 더 조심해야 하는 것은 ‘그 두려움에 흔들리는 나 자신’입니다! 원수(사탄 마귀)는 ‘두려움’이라는 막연한 허상을 우리 앞에 내밀어 놓습니다.
그 허상을 우리 영혼 앞에 두고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도록,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떠나도록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거짓을 쏟아냅니다. 2~6절의 갖은 유혹과 독설을 쏟아냅니다.
3. 특히, 사람들의 입과 비아냥을 통해 우리를 공격합니다. 속입니다. 낙망하고, 낙심하게 합니다. ‘시편 42편 3절’,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라는 기록대로 주변의 사람들은 우리를 향해 유언(有言), 무언(無言)의 손가락질을 합니다.
이때 우리의 반응은 어때야 할까요? ‘내가 마침내 성공하여 갚아 주리라! 하나님, 저들의 비방을 잠재우도록 나를 통하여 일하시옵소서! 나를 통해 영광 나타내시옵소서!’라는 기도를 하는 것이 옳을까요?
그렇게 기도하는 것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개인의 자유입니다. 성경을 그렇게 이해하고 기도한다고 다 틀린 것이라고 말 할 수는 없습니다. 7~9절은 그렇게 기도한 응답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4. 하지만, 저의 묵상… 제 기울어지고, 연약하고, 병든 심령에 하나님의 말씀이 살리는 약으로 퍼지길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을 때… 적어도 10절은 달랐습니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라는 표현이 그대로 영혼에 번져 나갔습니다.
“주님,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공격하는 그 어떤 사람을 갚아 주시는 결과물’로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그저 ‘여호와 하나님, 당신 자체’로 즐거워합니다! ‘예수님 그 분을 향한 순전한 마음’이 회복됨으로 기뻐합니다. ‘주의 날개 그늘 아래(시63:7)’ 피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라는 고백으로 다가왔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정직’은 ‘거짓말하지 않는것’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직’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yashar’는 ‘곧게 서다. 바로 서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께 붙들려 바로 서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붙들리지 않으면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자신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내 자아를 못 박는 것이 ‘정직’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의로움에 바탕한 정직함을 자랑하다 넘어졌습니까?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아실 것입니다.)
인간의 기울어짐, 특히 자기 이익과 의로움에 기울어진 나 자신을 철저히 인정하면 사탄의 교묘한 술책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때로는 두려움으로 공격하고, 때로는 인간의 의로움을 긁어주는 사탄 마귀의 속삭임에 속지 않습니다.
세상과 사람이 쏟아내는 근심 가득한 소리가 아니라, 매일 십자가로 부르시는 진리의 음성에 기대어 승리하시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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