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출애굽기 15장 22~27절
1. 이제,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안타깝게도 그 시작은 ‘불평’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의 불평과 불만은 끊이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물’때문입니다. 16장은 ‘먹거리’ 때문에 불평을 넘어 원망(출16:3)에 이릅니다.
제 솔직한 심정은 ‘그럴 수도 있겠다…’입니다. 광야에서 ‘물’을 비롯한 ‘먹거리’는 육신의 생명과 직결됩니다. 제대로 된 물 저장 수단이 없었던 시대에 그 뜨거운 광야를 3일 동안 걸었다는 것은 죽음 직전까지 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의 눈높이에서 응답하셨습니다. 써서 마시지 못하는 물을 마실 수 있는 물로 바꾸셨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2. 그러나, 여기서 멈춘 것이 문제입니다. 보이는 것이 채워지고, 응답되는 것에서 머문 것이 문제입니다.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진정한 메시지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반복되는 불평과 불만의 쳇바퀴를 돌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 ‘써서 마시지 못하는 물’의 참 의미가 무엇일까요? 물에 독극물이라도 섞였다는 뜻일까요?
물이 써서 마시지 못했다는 의미를 잘 생각해보십시오. ‘써서 마시지 못하는 물’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마실 수 있으나 다시 곧 목 마름에 시달린다는 의미입니다. 마실 수 있으나 그 물을 마시면 큰 탈이 난다는 의미입니다. 오히려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마라의 샘’으로 추정되는 곳은 홍해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염분이 많아 사람이 마시기에 적절하지 않는 샘입니다. 목이 너무 말라서 짠맛을 참고 마실 수 있지만, 오히려 더 큰 갈증 때문에 고통과 괴로움이 더한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는 물(짠맛이 너무 강하면 쓰게 느껴집니다.)’입니다.
이것의 영적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세상의 것, 눈에 보이는 것, 육신의 즐거움을 위한 것들로 영혼을 채우려한들 아무 소용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으로 채워야 할 우리의 영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축여야 할 우리의 영혼, 성령의 은혜로 적셔야 할 우리의 영혼을 엉뚱한 것들로 채우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3.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입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채찍을 대시지 않습니다. 25~26절의 기록처럼 그들에게 ‘목 마르지 않는 물’을 주셨습니다. 단순히 육체의 질병을 치유하는 물이 아닌, 영혼의 질병을 치유하는 ‘라파(Rapha)’의 물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엘림’으로 인도하십니다. 12개의 샘물과 70그루의 종려나무가 있는 ‘엘림’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성경에서 12와 70은 완전함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물론, 오늘날에도 ‘엘림’으로 추정되는 곳에는 큰 오아시스와 나무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한 나무’와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정하신 법도와 율례’입니다. 이것은 조건이 아닙니다.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상(축복)과 벌(저주)을 놓고 저울질하는 것이 아닙니다.
‘범죄한 인간 대신 죽으신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완성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나무, 십자가’에서 이루실 구원의 완성을 미리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시내산 언약’은 이스라엘 민족 종교(?)에서 지키는 종교 규례 혹은 율법이 아닙니다. 생명으로 초청, 하나님의 부르심이 깨알같이 적힌 은혜의 기록임을 먼저 말씀해주시는 것이 ‘마라의 샘물 사건, 엘림으로의 인도’입니다.
즉, 범죄함으로 하나님을 떠난 인간! ‘스스로 자존하시는 하나님(여호와 하나님)’에게 기대어 살아는 것을 버리고 썩어 없어질 것들에 기대어 종처럼 살아가는 인간! 마셔도 마셔도 타는 영혼의 갈증을 채울 수 없어 헤매는 인간!을 ‘엘림, 가나안, 천국, 여호와의 품’으로 인도하신다는 하나님의 사랑의 의지가 함축적으로 녹아 있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4. 저는 믿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살아가는 하루의 삶, 매일의 삶 속에 ‘천국으로 향하는 여정’이 담겨 있음을 믿습니다.
잠시 ‘쓴 물’ 때문에 마음이 무너지지만, ‘한 나무(십자가)’를 통해 영혼의 생수를 허락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하루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것들이 채워지지 않을 때 느끼는 허상의 목마름에 속지 마십시오. 십자가에서 흐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허상의 목마름’에 속는 자아에 기울어진 나를 씻어내십시오.
그때, 우리 안에 흐르는 성령의 생명수를 느끼게 됩니다. 누구든지 값없이 마시라는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질그릇 같은 우리 영혼을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이 없어 쩍쩍 갈라져 터진 ‘질그릇’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적셔져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 내게 있는 것에 감사하게 됩니다. 주변으로 눈 돌려 어지럽고 혼란한 내 시선이 십자가에 고정됩니다. 그렇게 참 만족과 감사함에 감격하게 됩니다.
땅의 것을 줍고, 채우기 위해 엎드렸던 우리가 하늘을 향해 눈을 들고, 십자가를 향해 영혼의 잔을 들게 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