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이사야 21장 1~7절
1. 이사야 21장에 기록된 말씀은 ‘해변 광야, 바벨론, 두마, 아라비아’에 닥칠 운명에 대한 하나님의 알림(경고)입니다.
역사학자들의 견해 차이에 따라 지리적으로 ‘해변 광야(1절)’와 ‘바벨론(9절)’을 같은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해변 광야’는 ‘블레셋 지역(지중해 연안 평지)’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또한 고대 근동 역사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앗수르, 바벨론)’과 ‘이집트 문명(애굽, 구스)’의 교류가 일어난 ‘해변 길’이 ‘블레셋 족속’이 거주했던 ‘해변 광야’입니다.
따라서 ‘바벨론’이 팔레스타인 지역(이스라엘, 블레셋 지방)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변 광야’에 대규모 군대를 주둔시켜야 했습니다.
그래서 1~9절은 ‘해변 광야’에 대한 경고임과 동시에 ‘바벨론 멸망’에 대한 경고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그러면 11~12절의 ‘두마’와 13~17절의 ‘아라비아’에 관한 경고도 살펴봐야 합니다. 여기서 11절의 ‘두마’와 13절의 ‘드단’이 오늘날 어디에 해당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견해가 다양해서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 지역들이 13절의 ‘아라비아’ 지방에 속한다는 것에는 대부분 동의합니다.
결국 18~21장 전체를 놓고 생각해보면 맥락이 잡힙니다. 18~19장은 이스라엘이 의지하던 남쪽 세력, 전통의 세력’에 대한 기록입니다. 21장은 이스라엘이 의지하던 ‘북쪽 및 신흥 세력’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리고 이 두 세력의 마지막은 20장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21장을 읽으면서 다시 20장으로 영혼의 시선이 옮겨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3절의 기록을 조금 더 생각해봐야 합니다. “요통(원어: ‘허리에 가득한 통증’), 해산의 고통”은 단순히 ‘고통의 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이런 식의 단순한 이해로 인하여 이런 본문을 ‘교만한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계속 말씀드리지만, ‘교만한 바벨론, 앗수르, 애굽, 구스, 주변 민족들’에 대한 심판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대신 그들을 의지하고, 그들의 삶을 따라간 남유다(이스라엘)’에 대한 경고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따라서 4절의 “요통, 해산의 고통”의 특징이 있습니다. 처음엔 강도가 약합니다. 하지만, 통증이 반복되면서 주기가 짧아지고, 강해집니다. 그러다 ‘갑자기 찾아옵니다.’
네, 저들을 향한 심판의 엄중함에 취해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 허무한 것에 마음 빼앗기고, 거기에 소망을 둠으로 서서히 또 스스로 멸망 길을 향해가는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와 싸인을 무시한 ‘나, 우리’에 대한 간절한 부르심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3. 사실, 이 부분이 ‘예언서’를 읽을 때의 관건이자, 문제점입니다. 예언서를 읽으면서 ‘남유다’의 멸망에 관한 하나님의 경고를 읽을 때는 뭔가 회개하는 듯한 태도를 취합니다.
하지만, ‘북이스라엘’ 혹은 ‘다른 이민족’ 특히, ‘바벨론, 앗수르’의 심판이 나오는 순간 ‘선민의식’이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전지전능, 우주최강의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위해 싸워 주신다고 의기양양 해집니다. 마치, 만화영화 속 수퍼 히어로를 바라보는 ‘순진한? 어린 아이’같이 돌변합니다.
제발, 이런 ‘유아적 신앙관’으로 더 이상 성경을 읽어서는 안 됩니다. ‘이사야 20장 5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을 심판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나 여호와 아닌, 허망한 것! 너희가 심지어 내 이름으로 받았다고 하는 허탄한 것을 부끄럽게 할 것이다. 그것들을 심판할 것이다. 그러니, 제발 그것들과 함께 있다가 같은 운명이 되지 말아라! 나 여호와께 돌아와라!”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입니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고, 육체로 누리는 것들에 마음 빼앗기지 마십시오. 거기에 소망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진리’만을 참 소망으로 붙드는 것이 더욱 감사한 오늘 입니다.
하늘로부터 임하는 ‘십자가 소망’이 각 가정과 삶에 넘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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