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이사야 19장 1~15절
1. 이사야 19장은 애굽(이집트)을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애굽에 대한 심판 경고’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심판은 회복을 위한 과정입니다. 심판과 회복은 반드시 같이 움직입니다. 내일 살펴보실 16절 이하에서 ‘애굽 사람들도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경배할 것’을 말씀합니다.
애굽은 고대로부터 초강대국이었습니다. 따라서 고대 지중해 주변과 근동지역에서 발흥한 ‘신흥 강국들’은 ‘애굽’ 정복이 큰 숙제였습니다. 특히 ‘나일강 유역의 비옥한 토지’를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경제적 부흥과 직결되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은 ‘출애굽’했음에도 불구하고, 늘 ‘애굽’을 의지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졌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보다 현실 세계의 강대국(현실은 이빨 빠진 호랑이)인 ‘애굽’을 의지하려 했습니다.
특히 ‘앗수르, 바벨론’이 세력을 키우고, 공격해 올 때, 항상 ‘애굽’에 기웃거렸습니다. ‘애굽’이 도와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애굽’은 늘 ‘이스라엘’의 이런 약점과 심리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려 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런 ‘애굽’을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그토록 의지하는 애굽이 어떤 처지가 될 것인지를 똑똑히 말씀하십니다.
2. 여호와 하나님의 애굽에 대한 경고는 매우 구체적입니다. 1절의 “빠른 구름을 타고”라는 것은 애굽이 신속히 무너져 내려, 쇠약해질 것을 의미합니다.
2~3절은 ‘애굽’이 내란으로 인해 스스로 무너질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예언대로B.C 720~716년 사이에 애굽은 극심한 내부 분열에 휩싸여 적어도 18명의 독립된 제후국과 왕들이 등장해 내전을 겪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애굽 사람들의 종교적, 도덕적 혼란과 해체, 해이에 처하게 됩니다.
그렇게 ‘애굽’은 4절의 “잔인한 주인, 포악한 왕”에게 넘어갑니다. 역사적으로는 ‘구스’, 어제 보셨던 ‘구스 왕 사바카’에게 지배를 당하게 됩니다. (물론, 구스가 애굽을 점령했다고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어제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게 5~10절은 애굽이 경제적으로 몰락할 것을 말씀한 것이며, 11~15절은 당시 최고의 학식과 문명을 자랑하던 애굽의 지혜로운 자들이 자기 꾀에 넘어가 어리석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특히, 5~10절의 애굽의 경제는 ‘나일강’과 직결됩니다. 나일강은 매년 반복되는 홍수가 축복이었습니다. 엄청난 양의 퇴적물은 나일강을 비옥하게 하였습니다. 거기서 생산된 곡물(오늘날도 순위권에 드는 곡창지대입니다.)과 풍부한 어족자원 등은 최고의 부와 그 부를 바탕으로 한 힘(국력)을 쌓았습니다. 찬란한 학문과 문명, 종교, 문화의 근원이었습니다. 오죽하면 ‘나일강’을 신으로 섬겼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애굽의 풍요의 상징이자, 풍요를 제공하는 ‘나일강’의 수위를 낮추십니다. 말라버리게 하십니다. (7절) 이것은 애굽 뿐만 아니라, 고대 세계의 큰 충격이었습니다. 또 반대로 이런 예언을 아무도 믿지 않으려 했을 것입니다. 믿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내가 의지하는 애굽이 망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3. ‘애굽’의 멸망, 특히 누가 믿고 싶지 않았을까요? 네, ‘남유다’ 사람들입니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남유다’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만한 애굽’에 대한 심판으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 믿는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특히, ‘선민의식’으로 가득한 ‘이스라엘 위정자들,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선민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저 교만한 애굽을 내가 심판한다’라는 메시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음입니다.
“너희가 그토록 의지하던 ‘애굽’이 이렇게 될 것이다. 그러니 제발 ‘애굽’을 의지하지 말아라. 내가 10가지 재앙과 홍해를 가르면서까지 건져낸 애굽으로 제발 눈 돌리지 말아라. 다시 말한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허무한 것들을 의지하지 말아라! 그것들을 의지하다가, 그것들과 같은 운명에 처하지 말고, 대속의 은혜 붙들고 나 여호와께 돌아와라!”
바로 이 간절한 하나님의 마음이 오늘 본문에 녹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성령의 인도함으로 말씀을 본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잣대로 하나님 말씀을 대한 것이 아닙니다.
혼란한 시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갈수록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내 영혼의 진정한 생명수, 내가 의지할 유일한 반석이신 예수님 안에 든든히 서시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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