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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1일 2021년 화요일 묵상

작성자 사진: Hyung YunHyung Yun

본문: 시편 72편 1~20절


1. 시편 72편은 솔로몬의 시편입니다. 그런데, 20절을 보면 마치 다윗의 시편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0절은 시편 ‘제 2권’의 마무리의 첨언으로 보시면 됩니다. 시편은 다섯권의 모음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 1권’과 ‘제 2권’의 다수가 ‘다윗 시편’입니다. (물론, 150개의 시편 중 전체 다윗 시편이 73개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감동으로 시편을 모았던 편집자들이 ‘시편 72편(솔로몬 시편)’을 ‘제 2권’의 마지막에 배치한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20절의 첨언을 넣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2. 시편 72편을 묵상하면서 이런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참 오해하기 좋겠다. 솔로몬이 자신이 받은 특별한 축복을 자랑하듯 기록한 것으로 보기 좋겠다. 그렇게 ‘나도 이렇게 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기 딱 좋겠다.”

특히, 솔로몬과 그 후대에 등장하는 왕들은 이 시편을 읽으면서 일종의 다짐도 했을 지 모릅니다. “나도 하나님께 축복받아 이 시편에 기록된 일들을 행하는 그런 왕이 되겠다.” 분명 그랬을 것입니다. 처음에 왕이 되면서 나라를 망칠 작정하고 시작하는 사람 없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 생활하면 하나님 뜻 반대로 살겠다고 작정하는 사람 없습니다. 기왕이면 오늘 본문에 기록된 삶을 살고 싶습니다.

비록, 왕은 아니더라도 각자의 처한 자리에서 ‘시편 72편’에 기록된 삶을 살고 싶습니다. 열심히 신앙 생활해서 축복받고 싶습니다. 이런 인생의 결과물이 내 삶을 통해 드러나길 간절히 바랍니다.

(저도, 여러분도 시편 72편의 삶을 살길 간절히 바라고, 축복합니다!)


3.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다시 이 본문의 참 의미에 집중해야 합니다. 흔히 1~2절을 보면서 ‘지혜를 구한 솔로몬의 기도(열왕기상 3:3~14절)’를 생각합니다. 그렇게 ‘솔로몬의 재판(열왕기상 3장 16절 이하)’를 떠올립니다.

마치 공식처럼 그렇게 연결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똑똑함(?)으로 그 까다로운 문제를 해결한 위대한 왕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는 단순히 ‘아기의 진짜 어미’를 찾아준 놀라운 명석함이 아닙니다. 아기의 생명 앞에서 진짜 생명을 준 어미가 누구인지 드러나게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함께 나눴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기를 살리기 위해 자기 생명(아기를 포기하는 어머니는 이미 죽은 것과 같습니다.)을 포기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솔로몬 재판’의 핵심입니다.

솔로몬의 똑똑한 머리에 가려진 어머니의 마음(하나님의 본심, 예수님의 십자가)을 발견하지 못하면 ‘십자가 복음의 진리’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3. 네, 너무 익숙하고, 당연한 1~2절을 다시 묵상해야 합니다. 1절의 “판단력(mishpat)”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대하시는 마음입니다. 죄인인 나 대신 죽으신 예수님의 마음, 그 분이 우리를 대하시는 긍휼과 은혜, 사랑입니다.

2절의 “공의(tsedaq)”는 ‘죄’를 심판하시지만, 그 죄의 값을 하나님 자신(예수 그리스도)이 대신 지심으로 ‘의로움’과 ‘사랑’을 동시에 완성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솔로몬과 그 이후에 등장하는 모든 왕들은 어떤 마음으로 백성들, 가난한 사람들을 다스리고, 재판하고, 섬겨야 했을까요? “제가 가장 먼저, 가장 많이 하나님의 긍휼히 여겨 주심, 불쌍히 여겨 주심을 입은 사람입니다.”라는 마음으로 모든 일을 대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살았을까요? 그러지 못했습니다. 처음에 조금 그랬다가, 나중에 달라졌습니다. 죽는 그 날까지 하나님 앞에 그렇게 엎드려 살지 못했습니다.

조금만 잘되는 것 같으면, 좀 잘 나가는 것 같으면 변했습니다. 7~11절의 기록과 비슷한 일이 자기 삶에서 나타나면 여지없이 변했습니다.


4.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2절 이하에 계속 등장하는 “그”는 솔로몬 혹은 왕이 아닙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누구도 예외 없이 믿음으로 바라봐야 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저는 이 본문을 묵상하며, 나이 많은 솔로몬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런 마음으로 기록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 그게 아닌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제가 이 백성의 구원자인 줄 착각했습니다. 대속의 은혜를 완성하실 그 분,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했습니다. 그 바라봄이 저를 더 낮아지고, 겸손하게 만든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말도 안되는 자기 의로움, 슬프기까지 한 나의 착각에서 빠져나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소망을 붙잡고 살았어야 했습니다. 이제, 더 늦기 전에 엎드립니다. 더 늦기 전에 십자가의 소망에 자아의 높아진 마음, 불안한 마음, 허망한 마음을 못 박습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도 분명,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붙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 내가 다시 만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런 소망이 필요한 분들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만나지 못한다면, 만날 수 없다면, 진심 어린 한 마디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만날 수 있다면 저와 여러분의 삶과 전인격을 통해, ‘뉴저지 주님의 교회‘를 통해 이 소망이 흘러가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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