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5일 2021년 수요일 묵상
- Hyung Yun
- 2021년 8월 25일
- 2분 분량
본문: 시편 68편 19~35절
1. 시편 68편의 전반부는 그 옛날(출애굽)에 있었던 하나님의 구원과 그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노래했습니다. 후반부인 오늘 본문에서는 지금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현재적 구원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현재적 구원은 필요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어떤 급한 일,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 등’에 하나님의 신적 개입(intervention)이 작용하여 ‘내가 원하는 좋은 방향으로 상황이 바뀌는 것’이 현재적 구원이 아닙니다.
누구도 예외 없이 매일 매순간 십자가에서 주시는 ‘현재적 구원’이 필요합니다. 십자가에 붙들리지 않으면 기울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자기 본성에 철퍼덕 넘어져 허우적거릴 존재임을 알고, 죽을 것처럼 십자가를 붙드는 것이 ‘현재적 구원’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입니다.
아니, 이런 내 존재를 순간마다 깨닫게 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들게 하시는 것이 ‘현재적 구원’입니다.
2. 상황이 바뀌고, 나아지고, 개선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런 외적인 변화 마저도 매일 나를 십자가로 이끄시는 은혜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이런 마음으로 19~20절을 다시 보십시오. 이 고백과 기록이 그냥 나온 것일까요? 다윗의 시인의 감성, 재능, 달란트에서 나온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런 것은 재능이 아닙니다.
대속의 은혜를 붙든 죄인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가엾게 여겨 주심을 붙든 자! 위로부터 임하는, 하늘로부터 임하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자! 영혼의 무릎을 꿇은 자가 쏟아낸 영혼의 고백입니다.
3. 19절에 “찬송할지로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barak’는 ‘찬송하다. 축복하다’의 의미와 함께 ‘무릎꿇다’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먼저는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긍휼히 여겨 주심을 입은 자’의 영혼의 태도는 ‘무릎 꿇음’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 긍휼, 사랑, 구원 등’을 체험한 사람이라면, 그것에 말로 다할 수 없는 감사와 사랑을 드리는 사람이라면 ‘무릎 꿇은 삶의 태도와 자세’가 흘러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도저히 그렇게 뻣뻣하게 살 수 없고, 도저히 그렇게 황당한 태도로 인생을 대할 수 없습니다.
4. 그리고 다시 살펴볼 다윗의 표현이 있습니다. 19절의 ‘짐을 지시는’이라는 것은 흔히 생각하는 ‘우리 삶의 고난, 역경, 어려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내면의 근본 죄악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기울어져 스스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간 본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알고 있습니다. 내가 당하는 고난이 절대 악인인 ‘사울’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사울도, 나도 같은 존재이다. 범죄한 인간 실존에 기울어진 나를 여호와 하나님께 붙들어 매지 않으면 나 역시 쓰러져 넘어지는 존재이다.’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특히, 왕이 된 이후, 모든 것을 이룬 것으로 생각한 이후 그에게 닥친 고난은 ‘스스로의 결정, 스스로 걸어간 삶의 결과’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내가 너의 짐, 너의 범죄한 본성을 대신 질 것이다.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너의 모든 죄악을 대신 질 것이다. 대속의 은혜를 완성할 것이다. 너는 그 소망과 믿음으로 오늘 일어서라!’는 메시지를 들려주셨습니다.
5. 오늘 본문, 아니 성경 전체의 핵심은 19~20절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특히 19절의 “하나님을” 을 원문으로 보면 영어 ‘the’에 해당하는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 하나님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한 것입니다. (NAS, KJV, AMP 등은 ‘The God’이라고 번역합니다.)
지금 어떤 상황에 계십니까? 나의 힘으론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 처한 분도 분명 계실 것입니다.
바로 이 때 우리는 압니다. 두 갈래의 길이 있습니다. 거기서 탄식과 절망에 머물 것인가? 오늘 내게 임한 구원! 이 상황 앞에 쓰러진 나를 붙들어 세우시는 십자가의 구원을 붙들 것인가? 이 두 가지 선택지 외에는 없습니다.
그 일, 그 상황, 그 사람, 그 현상들 때문에 요동치는 내 심령이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임재로 잠잠해지는 역사가 일어나길! 그렇게 오늘 주신 구원을 우리 함께 누리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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