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레위기 18장 19~30절
1. 이번 달(8월) 본문은 ‘레위기’입니다. 올해 3월, ‘레위기 17장’까지 살펴봤습니다. 레위기는 참 부담스러운(?) 성경입니다. 설교자에게도, 읽는 사람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성경입니다.
‘레위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종교 예식 혹은 종교 규례’를 기록한 성경으로 바라보는 선입견을 버려야 합니다.
‘레위기’에 기록된 모든 제사와 규례가 가리키는 것은 ‘십자가 대속의 은혜’라는 것을 기억하며 읽어야 합니다. ‘레위기’의 제사는 종교 행사를 위한 절차가 아니라, 하나님과 연결되는 과정입니다.
또한 레위기가 제시하는 규례를 다 지킬 수 없는 인간의 죄성과 한계를 인정하며 읽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소극적으로는 레위기에 기록된 규례를 지킬 수 없는 연약한 인간! 적극적으로는 지키기 싫어하는 범죄타락한 인간이 나 자신이라는 것을 인정하며 읽어야 합니다.
따라서 ‘레위기’는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다스림,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을 싫어 버린 인간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배려와 사랑이 기록된 성경입니다.
애굽에서 죄가 죄인줄도 모르고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를 건너게 하셨습니다. ‘시내산’으로 부르셔서 ‘시내산 언약’을 세우시면서 ‘다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제사와 규례)’를 주신 것입니다.
그 은혜의 기록, 생명의 기록, 사는 길에 대한 기록이 ‘레위기’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레위기의 제사와 규례는 ‘십자가에서 나 대신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2.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 죄가 죄인줄도 모르는 인간, 하나님을 떠난 이후 죄악된 본성대로 살면서 스스로 멸망길을 가던 인간(이스라엘 백성, 나 자신)의 원래 모습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좋은 성품, 성격, 도덕심도 하나님 앞에서는 죄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버린 인간은 갖은 좋은 것(도덕, 윤리, 종교 등)으로 자기를 포장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인간의 교묘한 자기 의로움에 빠진 죄성을 인정하며 오늘 본문을 읽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적인 의로움에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나는 저 정도로 끔찍한, 추악한 범죄는 저지르지 않는다. 그런데, 저것들은…”이라는 식의 자기 의로움에 근거한 정죄감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레위기 18장에 기록된 내용은 입에 담기도 민망합니다. ‘근친상간(近親相姦, incestuous), 동성연애, 수간(獸姦, bestiality) 등’에 대해 분명히 죄악이라고 기록합니다.
지면의 한계로 고대 이집트 문화와 풍속을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6~23절이 일반적인 풍속이었습니다. 알려진 것처럼 고대 이집트 왕실과 사회에서는 근친혼과 동성애가 보편적인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그대로 따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머리 속에 잘못된 것을 잘못된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집트에서 다들 그러고 사는데…’라는 안일한 생각을 오늘 말씀을 통해 바로잡고 계십니다.
오늘날 세상 문화에서 구별되어야 할 교회마저 무너져 내리는 현실이 너무 충격입니다. 레위기 18장 2~5절, 24~30절은 무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는 길! 생명의 길!’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엎드려 회개하며 생명의 길로 나가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3.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상대적인 자기 의로움’입니다. 좀 쉽게 말하면, ‘적어도 나는 저런 짓은 안 한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6~23절 사이에 19~20절이 있습니다. (제가 글로 쓰고, 언급하기 민망해서 ‘몇 절~몇 절’로 썼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범죄에 대한 결과는 24~30절로 동일합니다.
오늘 레위기 18장에 기록된 모든 죄악(아니, 성경에 기록된 모든 죄악)은 인간이 서로 ‘내가 낫네, 네가 낫네…’라며 저울질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근친상간, 동성애, 수간 등’을 옹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인 내가 십자가 붙들고 회개하고 돌이켰다면, 그들도 십자가 앞에서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켜 생명의 길로 나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죄인인 내가 누군가를 판단함으로 그들이 십자가 은혜로 나아오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나의 어설픈 의로움과 정죄하는 마음 때문에 십자가 대속의 은혜가 그들에게 흘러가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4.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로마서 1장 24~32절’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28~31절을 가만히 읽어보십시오. 거의 대부분 저와 여러분 속에 있는 어두움(죄악된 본성)입니다. 그렇다면 결과는 동일합니다. 32절에 ‘사형’이라고 분명히 기록합니다.
사도 바울은 누군가를 정죄하기 위해 성령의 감동으로 이런 편지를 쓴 것이 아닙니다. 그 역시 종교심에 불탄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종교가 되고, 율법이라는 단어 속에 갇히고, 사람의 종교심과 도덕심을 자극할 때 어떤 무서운 결과를 만드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교인들의 종교심을 부추겨 ‘스데반’을 죽였습니다. 이것은 우발적 살인이 아닙니다. 내면에 쌓이고 쌓인 종교적 의로움이 그때 폭발한 것입니다(사도행전 7장 58절, 8장 1절).
28~32절을 기록하는 사도 바울의 마음을 묵상해보십시오. 죄책감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나를 구하신 예수님을 향한 감사와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나도 예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사람 죽인 나도 구원하신 예수님입니다. 모두 다 예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라는 외침입니다.
레위기의 규례를 읽으며 그런 행위를 한 어떤 사람이 떠오르면, 빨리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나도 모르게 들어오는 정죄감을 떨쳐야 합니다. 정죄하는 마음 뒤에 숨은 자기 의로움을 버려야 합니다.
물론, 레위기 규례를 범한 사람은 당연히 회개하며 돌이켜야 합니다. 용서하시고, 회복하시길 원하시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들어야 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레위기를 읽으며 우리 모두를 십자가로 부르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가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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