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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9일 2020년 수요일 묵상

작성자 사진: Hyung YunHyung Yun

본문: 이사야 29장 15~24절


1.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이 계속 드러납니다. 남유다의 예루살렘, 그곳에서 최고의 자리에 앉아 정치, 종교를 장악한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 이어집니다.

물론, 이 말씀은 ‘특정 종교인’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 받음, 예수님을 믿음, 복음을 깨달음 등’을 왜곡된 ‘선민의식’ 혹은 뒤틀린 ‘종교지식’으로 받아들인 모든 사람에게 해당됩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사람의 패역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신다는 사실입니다. 구원과 회복의 역사를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15~16절은 여호와 하나님을 속이고, 여호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자들의 패역함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17~21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과 회복의 은총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드러나 있습니다. 높아진 것을 낮추시고, 교만함을 겸손으로 바꾸시는 역사를 구체적으로 기록합니다.

22~24절은 야곱 족속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게 합니다. 물론, 이것은 ‘민족적 혈통, 종교적 정통성’에 기반한 잘못된 ‘선민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말씀이 아닙니다. 인간과 달리 맺으신 ‘언약’을 지키시고, 소중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핵심입니다.

2. 제 개인적으로 오늘 말씀에서 소름 끼칠 정도로 충격적인 말씀은 15~16절입니다. 정말이지,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성경대로 믿는 성도라면, 말 그대로 ‘중심(中心)’을 보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그 반대입니다. 말은 참 잘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고 말은 정말 잘하는데, 그렇게 믿고 있는데, 대부분 자기가 한 말에 스스로 속고 있습니다.

말로만 ‘살아 계신다.’고 할 뿐 ‘자기가 주인 된 삶’을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아실현의 도구일 뿐, 내가 원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간섭하시는 것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15절의 “자기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는…”이라는 하나님의 날카로운 지적이 ‘종교성과 도덕성’으로 포장되었을 뿐,’ 자아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간의 죄악된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지 않으십니다. 16절에서 ‘사람의 본심’을 그대로 드러내십니다. ‘토기장이’이신 하나님! 나를 빚으시고, 지으시고, 창조하신 하나님을 대적하고, 속이려는 인간의 악함을 낱낱이 보고 계심을 말씀하십니다.

3. 특히 “그가 총명이 없다.”라는 표현은 교묘한(?) 표현입니다. ‘총명’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biyn’은 ‘이해, 인식, 알아차림 등’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원어적 의미를 부각시켜 번역한다면 ‘그는 이해심이 없다.’ 정도가 될 수 있습니다.

‘자기 계획을 숨기는 자들’이 왜 이렇게 말할까요? 네, 자기 맘대로, 저 깊은 심령, 인간의 본성 속에 있는 것들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뤄야 하니까 그런 겁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축복, 은혜, 영광, 쓰임 받음 등’으로 너스레 떨며 포장해야 하는데, 그게 자기들 뜻대로 안 되니까 그런 것입니다. 결국에는 ‘하나님은 날 이해 못하신다’는 식으로 말하는 겁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자기 계획, 욕망, 소원, 원함’ 등을 하나님의 ‘계획, 비전, 사명, 영광, 뜻’ 등으로 포장하는 것은 아닙니까? 기독교 종교 용어를 많이 듣고 말해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교묘하게 치장하여 하나님을 속이려 하지는 않습니까?

하기야, 생각해보면 대부분 모르고 그럴 겁니다. 알면서 그런다면… 그건 가망이 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 한가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17~24절에 기록된 여호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한 구원과 회복을 진실로 경험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대속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더 이상 숨기지 않습니다.

네, 예수님 앞에서 여전히 자신을 숨긴다면 ‘난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모른다’고 스스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쏟아 놓는 것만큼 행복한 것이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서 ‘회개로 말미암은 돌이킴’의 역사가 끊이지 않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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