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이사야 62장 1~12절
1. 오늘 본문(62장)의 회복과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는 다소 결이 다른 듯 합니다. 애절함이 더하다고 하면 어울릴 것 같습니다. 5절의 기록처럼 젊은이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청혼하는 정서가 가득합니다.
이사야 62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을 향한 의지는 ‘빛’과 ‘결혼’이라는 이미지로 드러납니다. 캄캄한 밤에도 이런 저런 ‘빛’을 만들어내는 오늘날, ‘결혼’이라는 약속이 다소 희미해진 현대의 생각으로 이 말씀을 대하면 하나님의 사랑, 의지, 마음이 흐릿하게 다가오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럴 때 기도해야 합니다. 그냥 나의 생각과 관념대로 성경을 읽지 않도록, 이런 내 마음에 성령의 빛이 임하길 간절히 기도하며 이 본문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2. 먼저, 1절의 ‘시온의 의(義 Righteousness)’와 ‘빛과 횃불’에 대한 성경적 해석을 다시 떠올리셔야 합니다. 재점검해야 합니다. 강조 드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60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62장은 60~61장의 반복이자 요약입니다.) 60장에서 말하는 ‘예루살렘에 회복될 영광과 빛’은 ‘여호와 언약 안에서 하나님을 다시 만나는 것’입니다. ‘대속의 은혜를 통해 죄인들이 빛이신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義 Righteousness)는 세상이 말하는 개념과 완전히 다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의’를 통해 드러나는 결과물은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시작과 과정이 다릅니다.
시작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통해 시작됩니다. 그 이루어지는 과정은 ‘하나님의 은혜, 예수님의 사랑’에 녹아 범죄한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에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뿐 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 외에는 남는 것이 없습니다.
3. 인간은 자체 발광체가 아닙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태양이 아닙니다. 달입니다. 마치, 태양빛이 비춰져 빛나는 것처럼 보이는 달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달, 빛을 반사하고 있는 달의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보입니다. 무엇이 보일까요? ‘토끼 한 마리’가 보입니다.
네, 성령의 조명, 진정한 빛이신 하나님에게 비추임을 받았다면! 그렇게 빛으로 회복되고, 쓰임 받는다면! 다 보일 각오를 해야 합니다. 다 드러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빛으로 쓰임 받는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뒤집어 생각해보면 참 두렵고, 무서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빛으로 쓰임 받는 것을 거부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서면 언제나 큰 무게감이 다가옵니다. 이런 말씀을 깨달았다면서, 이런 말씀을 전한다면서 여전히 부족한 모습… 여전히 그대로 살고 있는 제 자신이 답답할 지경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어떨 땐 한 분 한 분 여쭙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뻔뻔스러운 자아의 부끄러움을 안고 십자가 앞에 엎드립니다. 이런 저를 긍휼히 여겨 달라는 간절함으로 엎드립니다.
4.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입니다. 이런 우리의 심령에 ‘헵시바, 쁄라’라는 말 그대로 선택된 단어를 통해 우리를 다시 부르십니다.
‘헵시바(Hephzi-bah)’는 ‘나의 기쁨이 그에게 있다’라는 뜻입니다. (히스기야 왕비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뷸라(Beulah)’는 ‘결혼한 여자’를 의미합니자.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버림 받은 여인이 아니다. 다시 하나님과 결혼했다’라는 의미입니다.
마지막 12절 “너를 일컬어 찾은 바 된 자요 버림 받지 아니한 성읍이라”와 직결되는 말씀입니다. 이런 시적인 표현과 구조 등을 통해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와 사랑이 드러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인 ‘헵시바, 쁄라’로 회복되었음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그 자리에 머물지 마시고, 다시 십자가 붙들고 다시 일어서십시오. 이런 여러분의 모습이 하나님에게 기쁨이 됨을 믿으십시오(5~6절).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십자가를 통해 딛고, 돌이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저와 여러분 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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