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이사야 61장 1~22절
1. 여호와 하나님의 회복의 메시지는 더욱 선명해 집니다. 언젠가 말씀 드린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사야서를 읽으셨습니다. 아니, 말씀 그 자체이신 예수님께서는 오늘 말씀 그대로 행하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언약 안에 있는 저와 여러분을 통해 흘러가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아름다운 소식’이 전해져야 합니다! (1절)
이사야 61장은 찬송의 가사로도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1절과 3절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친숙함이 오해를 낳기도 합니다. 5~8절을 보면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갚아 주심’ 심지어 ‘복수’로 이해합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억압하고 공격하는 모든 세력을 하나님이 멸하시고, 마침내 그들의 섬김을 받게 하실 것이라고 단적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을 붙들고 억울함 등을 풀어 달라고 기도하기도 합니다. 특히 2절의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다양하게 적용합니다. 이사야서의 역사적 배경에서는 당연히 ‘바벨론의 멸망’을 언급합니다. 그러나, 2절의 ‘여호와의 은혜의 해…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가 더 중심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은 보복하시기 위해 멸망이라는 수단(?)을 이용하는 분이 아닙니다. 범죄 타락한 인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으면 그냥 그 상태가 멸망입니다.
현재 아무리 대단한 부와 권세, 명예를 누려도 소용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것이 십자가 은혜 언약 안에 있는 ‘여호와의 은혜, 그 아름다운 소식’을 가립니다.
영적으로 피폐하고 가난하고, 상하고, 억눌린 줄 모릅니다. 왜냐면, 당장 눈에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이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의 상황과 환경으로 인하여 내가 더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있다면, 십자가 은혜의 본질을 죽을 만큼 붙들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축복입니다.
하지만, 지금 내 상황과 처지로 인하여 자아의 어떠함이 드러나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내가 원하는 것들을 이루고 즐기고 있다면, 그것은 안타까움 그 자체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의 많고 적음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있고 없음의 문제를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내 영혼의 상태, 내 영혼의 자세, 내 영혼의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말씀 앞에서 ‘나는 무엇을 바라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은 매일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을 회피한다면 좀 심각한 상황입니다. 우리 심령을 비추시는 성령의 은혜를 거절하려는 위험한 상태입니다.
3.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언약 안에 있는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6절)
종교 직분의 제사장이 아닙니다. 종교적 특권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가장 먼저 대속의 제사를 드린 자들, 가장 먼저 대속의 은혜에 붙들린 사람으로 부르셨다는 말입니다.
5~7절은 3절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5,6절의 ‘외인이 양떼를 치는 것, 이방 사람이 농부와 포도원 지기가 되는 것, 이방 나라의 재물을 먹는 것 등’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개념이 아닙니다. 과거엔 유다 사람들이 바벨론 혹은 이방인의 노예였으나, 하나님이 뒤집어 엎으시면 그들이 우리의 노예가 된다는 식의 저급한 이해를 버려야 합니다.
이것은 함께 사는 것, 함께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 언약 아래에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붙들고 회개하며 돌이킨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영원한 자유, 평안, 안식을 누리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8절의 ‘영원한 언약’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4. 하나님은 정말 크신 분입니다. 우리 삶의 하나 하나를 감찰하십니다. 분명 보고 계십니다. 나는 내 삶을 스스로 해석하고 평가하고 이리저리 핑계 대며 빠져나가지만, 하나님은 거기에 속지 않으십니다. 그냥 보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어디에 붙들려, 무엇을 향해가고 있는지 보고 계십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갑자기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늘 내게 선포된 이 은혜와 회복의 메시지가 덤덤한 것은 아닌가? 익숙하다 못해 식상한 것이 아닌가? 그냥 그렇게 들리기는 하는데, 내 심령에 꽂히지 않는 것이 아닌가?”라는 섬뜩할 정도의 자기 반성이 있었습니다.
몸이 아플 때 들리는 의사의 긍정적 진단은 기쁨이 됩니다. 재정이 어려울 때 통장에 들어오는 돈, 그 찍혀 있는 숫자도 기쁨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에 기록된 회복과 은혜의 메시지! 십자가 은혜 언약 안에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약속된 것은 얼마나 기쁠까요? 아니면, 예전에 기뻤고, 지금은 ‘기쁨’이라는 관념만 남은 것일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3절의 기쁨이 회복되길 기도합니다. 그렇게 저와 여러분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은혜 언약의 아름다운 소식’이 전해지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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