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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9일 2020년 목요일 묵상

본문: 베드로전서 5장 1~14절



1. 이제 베드로전서의 마지막입니다. 편지의 마지막에서 마지막 권면(1~11절)과 끝 마무리 인사 (12~14절)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2절의 “실루아노”는 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했던 ‘실루아노 (실라)’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대체로 아닌 것으로 봅니다.) 13절의 “바벨론에 있는 교회”는 오늘날 이라크 지역이 아니라, 당시 ‘로마 지역에 있는 교회’ 혹은 ‘바벨론’을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여 ‘로마제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 초대교회’라고 봅니다. (조금 더 확대하면 ‘오고가는 모든 세대의 교회’에 보내는 편지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작인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로 인해 ‘나는 해당사항이 없고, 목사에게 해당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물론, 오늘 말씀은 교회의 목회자, 지도자로 불리는 ‘제 자신’이 가장 가슴에 담고, 실천해야 하는 말씀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읽는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1절의 “장로”로 번역된 ‘presbuteros’의 뜻은 좁게는 ‘목회자, 장로’입니다. 넓게는 ‘연장자, 선임자, 인생의 선배 등’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먼저 예수님을 믿은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 ‘상관없는 것 같고, 나에게 껄끄러운 말씀’까지도 ‘나에게 주시는 말씀임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정말 귀한 영적 자세입니다. 이런 마음의 자세로 오늘 본문도 읽어 나가야 합니다.


2. 흔히 말하는 ‘평신도’들은 2절의 기록처럼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평신도 사역자’라는 용어?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사역자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양 무리”는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양무리’는 가족 구성원입니다. 또 넓게는 ‘우리가 만나는 모든 영혼들’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대할 때마다 2절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의 죄성은 이익에 따라 사람을 대합니다. 인간 관계를 맺습니다. 이권이 작용하면 억지로라도 관계를 유지합니다. 그 반대이면 헌신짝 버리듯 버립니다. 물론, 타고난 성품에 따라 이런 성향을 덜 나타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극한에 몰리면 어떤 짓을 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항상 예수님의 십자가에 묶여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4~6절을 볼 때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4절의 “목자장(예수님)이 나타나실 때(예수님의 재림 혹은 개인의 죽음으로 예수님 만날 때) … 영광의 관을 얻음”입니다. 5절의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심”입니다. 6절의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입니다.

네, 여러분은 많이 들으셨고, 알고 계십니다. “이렇게 하면, 저렇게 될 거야.”라는 ‘결과 지향적 신앙’입니다.

‘영광의 관’은 내가 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특히, 5절과 6절의 ‘겸손’은 도덕적 낮아짐이 아닙니다. ‘높이시리라’는 높은 자리, 칭찬 받는 자리, 인정 받는 자라’에 올려 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겸손’은 십자가에서 내가 죽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시는 것이 ‘높아짐’입니다. 여기서 “높이시리라(hupsoo)는 ‘일으켜 세움’으로 번역하는 것이 원어에 뜻에 더 가깝습니다.

3. 이러한 십자가 앞에서의 ‘낮은 마음, 겸손한 마음, 순전한 마음’이 있을 때 7절이 가능합니다. 내 생각에 맞는 결과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마음이 있을 때 ‘우리의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예수님의 인도하심에 나를 내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8절의 기록처럼 ‘미혹하는 사탄의 공격’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내 속에 걸려 넘어질 나의 정욕이 사탄의 먹잇감이 됩니다. 내 스스로 사탄의 입 속에 머리를 넣는 꼴이 됩니다.

베드로전서는 ‘그리스도인의 고난’이 주제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바로 알아야 합니다. 4장 13절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에 참여함’이 무엇인지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 자유와 승리, 생명을 주시기 위해 사탄의 공격과 유혹에 반응하는 죄악 된 육체의 정욕(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그렇게 부활하셨습니다. 높임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고 나가야 합니다. 이 승리와 은혜를 믿고 ‘사탄의 유혹’을 대적하고, ‘육신의 정욕’은 피해야 (못 박아야) 합니다. (내가 가장 잘 걸려 넘어지는 것, 사탄에게 먹잇감이 되기 쉬운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십시오.)

우리, 스스로 고난을 자처하는 어리석은 삶을 버립시다. 혹시 넘어져도, 다시 십자가 붙들고 일어섭시다.

그렇게 믿음의 반석이신 예수님, 영혼의 터가 되시는 예수님을 의지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삶을 사시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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