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7월 7일 2020년 화요일 묵상

작성자 사진: Hyung YunHyung Yun

본문: 베드로전서 4장 1~11절


1. 항상 그렇지만, 성경 말씀을 ‘십자가의 필터’를 통해 바라보지 않으면 종교 윤리, 종교실천 덕목에서 해석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도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사실, 그렇게 봤습니다.

1~6절을 단편적으로 이해하여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당하는 종교적 핍박, 고난 정도’로 이해하면 딱 ‘수박 겉핥기’ 입니다.

특히, 7~11절은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실천 윤리, 행동 강령으로 이해하기 딱 좋습니다. 그것이 틀렸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나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나 대신 내 안에 사시는 예수님, 삶의 주인 되신 성령님에게 있음’을 철저히 인정해야 합니다. (11절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렇게 내가 드러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2. 본문 1절을 ‘죄를 짓지 않기 위한 고행하라’는 것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그의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신 것을 믿고, 내 자아를 그 분의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죄에 대하여 승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특히,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입으라”는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통한 성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믿으셨기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믿음’으로 십자가 앞에 나아가라는 뜻입니다. ‘군인들이 전투를 위해 갑옷 입음(무장)’하듯 믿음으로 결단하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은 이후의 삶은 ‘사람의 정욕(생각, 판단, 옳음, 원함 등)’을 따라 사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기뻐하는 삶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2절) 자기도 모르는 사이 하나님의 사랑과 십자가의 은혜,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해 3절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4절의 기록처럼 ‘사람의 정욕’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비방’이 있습니다. 소극적으로는 “너만 잘 났냐?”라는 ‘비아냥 거림’이 있습니다. 적극적으로는 ‘공격, 핍박’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이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3절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지 않음으로 비방을 당합니다. “너희는 3절처럼 살아야 되는 것 아니냐?”는 이상히 여김을 받습니다.

우리는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5절의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 즉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설 때 “사실 대로 고하리라” 즉, ‘있는 그대로, 내가 살아온 그대로 말합니다. (개역한글 성경은 ‘직고하리라’고 번역했습니다.) ‘구원 받고, 못 받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 앞에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체 무엇을 내 입으로, 스스로 쏟아낼지 두렵습니다.

그래서 더 악착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붙들게 됩니다. 나는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기뻐합니다. 내가 아닌, 내 속에 예수님께서 나 대신 살기를 간구하게 됩니다.

6절의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를 3장 19절을 오해한 것처럼, ‘지옥에 구원을 위해 복음이 전해진 것’으로 해석하면 곤란합니다. 이것은 ‘저와 여러분, 신자의 본래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우리의 이전의 상태(지나간 때의 상태)는 ‘죽은 자’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이 전해져 ‘영혼이 구원’ 받은 것을 말한 것입니다.


3. 사도 베드로 역시 계속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7~11절을 ‘마지막 때를 앞둔 기독교인들의 종교 실천 덕목’으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8절의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는 ‘사람이 서로 사랑함으로 죄를 용서해주라’는 것이 아닙니다. “뜨겁게”는 원어를 너무 의역한 것입니다. ‘진실되게, 끊임없이’로 번역해야 원래 뜻에 더 가깝습니다. 따라서 8절 속에 담긴 복음적 메시지는 ‘진실되게 끊임없이 예수님, 그 분의 십자가를 사랑하는 것만이 모든 죄를 덮을 수 있다’입니다.

그리고 9절의 “대접하기를”은 ‘영접하기를’로 해석하는 것이 그나마 원어의 뜻에 가깝습니다. 헬라어(philoxenos)는 ‘모르는 혹은 어색한 관계의 상대방 등을 반갑게 맞이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무엇보다 11절을 마음에 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는 ‘그런 것처럼, 그렇게 여기고…’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그저 난 통로일 뿐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 받으심”이 무엇이겠습니까?! 진정한 하나님의 영광은 죄인은 죽고, 예수가 사는 것! 육체는 못 박히고, 예수의 영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 심지어 기독교인들이라는 사람들 마저도 어리석고, 이상하고, 지루하다고 여기는 ‘십자가 복음’만이 우리를 진리와 생명으로 인도할 줄 믿습니다!


지민철 목사


조회수 4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Comments


© 2017 My Father's Church of NJ.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