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이사야 10장 5~19절
1. 오늘 본문은 ‘교만한 앗수르’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지만, ‘교만한 앗수르’라고 제한할 수 없습니다. ‘교만’ 그 자체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는다며, 내가 하는 모든 것이 가한 줄로 착각하는 모든 류의 사람들에게 해당됩니다. 그러면 누구도 해당되겠습니까? 네, 기독교인들도 해당됩니다. 저 교만한 상대방이 아니라, 바로 나도 해당됩니다.
이런 마음으로 오늘 본문을 읽지 않으면, 안 읽는 것이 낫습니다.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는 줄도 모르고 교만하고, 뻔뻔하며, 날뛰는 앗수르 같은 그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나처럼 선택 받은, 특별한 유다 백성 같은 나는 해당사항 없다.”라고 생각하시면, 그냥 멈추십시오. 아니, 성경 자체를 읽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죄인인 나를 십자가로 부르시는 은혜, 말씀에 찔림을 통해 회복시키시려는 하나님의 음성’에 반응할 줄 믿습니다.
2. 하나님은 당대 최강국이었던 앗수르,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의 정체성?을 5절에서 분명히 하십니다. 그리고 6절은 앗수르가 침입하여 정복할 대상 즉, 북이스라엘까지만 점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7~11절의 내용을 보면 앗수르의 마음은 달랐습니다. 7절, “그의 뜻은 이같지 아니하여…”는 앗수르 왕의 마음이 변질되어 교만해진 것을 의미합니다. ‘허다한 나라를 정복하여(7절), 자신의 신하를 타국의 왕으로 삼으려 했습니다.(8절)’ 네, 대제국을 이루고 싶었던 것입니다. 황제가 되고 싶었습니다.
앗수르 왕의 교만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10~11절은 정말 심각한 것입니다. 10절의 우상은 ‘타국의 모든 신’을 의미합니다. 고대의 전쟁은 신들의 전쟁이었습니다. 따라서, 승전국의 신이 패전국의 신보다 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앗수르 왕이 지금까지 정복한 나라의 신들이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의 신상들’보다 뛰어났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우습게 여긴 것입니다.
12절은 이런 앗수르 왕에 대한 심판 예언입니다. 13~14절은 앗수르 왕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내가 제일 잘 났어. 난 그럴 자격있어.’를 그대로 드러낸 것입니다. 15~19절은 ‘앗수르 왕의 심판과 멸망’을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3. 앞서도 말씀 드렸지만, 이 말씀은 ‘저들’, ‘교만한 저들, 이방인 앗수르’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사람들, 스스로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선택, 하나님께 사용됨은 무제한, 무조건, 무한계가 아닙니다. ‘십자가’라는 분명한 기준, 한계, 제한이 있습니다.
특히, ‘축복’이라는 이름의 ‘신적, 초월적 선물 혹은 은사’를 받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조절됨, 걸러짐, 돌아봄’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선악과를 다시 묵상해보십시오. 선악과는 하나만 먹지 않으면 다른 것은 다 탐욕을 내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선악과를 통해 보여주신 ‘제한, 한계, 기준’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자유의지를 맘대로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의 ‘모든 실과’도 ‘기쁨으로 절제’하며 풍성함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선을 넘어간 ‘앗수르의 왕’은 남유다까지 공격했다가 18만 5천명이 몰살당하고, 자신은 앗수르로 돌아가 암살당합니다. (열왕기하 19장)
하나님께서 심판하셨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스스로 교만하여 도를 넘었기 때문입니다. 저렇게 많은 병력을 잃고 돌아왔으니 당연히 ‘정적들’이 가만히 둘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 북이스라엘 점령에서 멈췄으면 그런 험한 꼴은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십자가는 걸림돌입니다. 부정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죄악된 우리의 본성이 십자가에 걸려 넘어져야 합니다. 넘어져 울어야 합니다. 죄성의 깊이로 인해 소스라치게 놀라야 합니다. 그래야 ‘십자가의 소망! 이런 나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붙들게 됩니다!’
죽을 때까지 ‘십자가에 못 박힘’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죄성에 기울어진 나를 붙들어 매 주시는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죽을 것처럼 붙드십시오. 반드시 저와 여러분을 ‘십자가 그 생명의 길’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세상의 것으로 누리는 일시적이고 상대적이며 허망한 풍족함에 마음 빼앗기지 마십시오. 오직, 영원한 것으로 가장 먼저 채워주심으로 말미암는 분별, 만족, 감사, 진정한 풍성함을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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