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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0일 2020년 월요일 묵상

작성자 사진: Hyung YunHyung Yun

본문: 이사야 8장 1~8절



1. 주말에 살펴보신 ‘이사야 7장’의 내용은 ‘임마누엘’ 즉,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Incarnation)’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사야 7장 14절’은 ‘마태복음 1장 23절’에서 인용됨과 동시에 ‘예수님의 처음 오심’을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이 예언이 주어진 때가 중요합니다. 위기의 때, 어려운 때, 절체절명의 순간입니다. ‘앗수르’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연합한 ‘북이스라엘의 왕, 베가’와 ‘아람(오늘날 시리아)의 왕, 르신’은 그들에게 동조하지 않는 ‘남유다의 왕, 아하스’를 위협하기 위해 ‘남유다의 예루살렘’을 공격합니다.

바로 이 때,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아하스 왕’, 그가 비록 선한 왕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약속(‘여전히’를 넣으면 더 다가올 것입니다.)을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7장’과 함께 봐야 합니다. 7장의 예언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일어날 일, 구원의 역사’가 속히 일어날 것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2. 오늘 본문 1절에 기록된 ‘마헬살랄하스바스’를 직역하면 ‘신속히-약탈물-재빨리-노획물’입니다. 의역하면 ‘노략, 약탈이 신속히 있을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것을 ‘큰 서판에 통용문자’로 기록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2절에서 ‘제사장 우리야, 스가랴’를 불러 공증까지 받습니다.

3절을 보시면 놀랍게도 이것이 ‘이사야 아들의 이름’이 됩니다. 그리고, 4절에서 ‘아이가 아빠, 엄마’라고 부르기 전(일반적으로 1세 전후)에 ‘남유다’를 위협하던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딱 여기까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5~8절을 보시면, ‘앗수르’가 다시 ‘남유다’를 침공할 것을 말씀합니다. (실제 역사에서 그렇게 됩니다.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 왕’ 때, 앗수르의 산헤립이 침공합니다.)

이런 일을 겪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6절에 분명히 말씀합니다.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의 물”은 ‘여호와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6절과 7절에서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의 물”과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을 대비시킵니다. 즉, 예루살렘에서 솟아나는 ‘실로암 샘물’과 엄청난 규모의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을 비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7절의 ‘흉용’은 ‘mighty, strong’으로, ‘창일’은 ‘many, abundunt’의 의미입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인간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일하심’보다 ‘보이는 현상, 크고 화려함’을 더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솔직히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나에게, 내 삶에 일어나서 보이는 위대한 결과로 드러나길 바라면서 신앙생활 하고 있습니다.’



3. 그러나, 아쉽게도(?) 하나님의 약속은 ‘임마누엘(나와 함께하심)’ 딱 거기까지 입니다. 함께 하심 외에도 뭔가 더 있으면 좋겠는데, 딱 거기까지입니다.

하지만, 이 아쉬움(?)이 다가 아닙니다. ‘임마누엘’을 생각할 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방법, 이유’를 펼쳐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함께하심 그 자체로’ 만족하고 기뻐하며, 멈출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악한 왕, 아하스’였지만, 여전히 눈에 보이는 ‘거대하고 대단한 앗수르’를 의지하는 ‘남유다 백성’이었지만, 먼저 찾아오셔서 ‘임마누엘,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네, ‘죄인인 나를 먼저 찾아오신 예수님의 은혜’를 붙들고 있다면, ‘임마누엘(나와 함께 계심)’ 그 이상의 것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우리, 예수님 믿으면서 ‘떨어지는 콩고물’에 너무 관심 가지지 맙시다. 그냥 그 분과 동행함, 십자가 안에서 그 분과 함께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예수님 믿어야 합니다. (사실, 뭔가 더 있는데… 우리의 죄성이 그것만 생각할 까봐 말을 아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순전함, 순수함’이 회복되고, 유지되는 것을 통해 말할 수 없는 ‘영적 축복’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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