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7월 17일 2020년 금요일 묵상

본문: 이사야 6장 1~13절



1. 이사야 6장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말 그대로 ‘중요한 장면’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이사야의 선지자적 사명’을 증명?하는 성경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명자들’이 이 성경에 은혜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성경이라고 믿고, 간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목회자뿐만 아닙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이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라는 가사가 들어가는 찬양을 부르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려 합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자신이 경험한 ‘어마어마한 영적 현상(1~4절)’을 말함으로 ‘선지자의 권위? 혹은 당위성’을 주장하기 위해 본문을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악된 자신의 본질’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이런 나를 용서하시고, 이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혜’, ‘죄를 불사르시는 대속의 은혜’를 강조하기 위해 기록한 것입니다.


2. 사실, 이사야 6장의 핵심은 5~7절입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현현(顯顯, manifestation)’,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한 것을 가지고 자신의 신적권위를 내세우는 수단이 되면 안 됩니다. ‘하늘어전회의’를 봤다는 식의 표현과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의 현현’을 경험한 사람의 특징은 5절에 명백히 드러납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입니다. 진짜 하나님을 만나면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 ‘천국을 봤다. 하나님을 만났다.’라는 식의 간증을 할 때, 딱 한가지만 보면 됩니다. 5절의 반응이 있는지 없는지를 보면 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거룩하지 못한, 거룩할 수 없는 자신’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사야의 마음 속에는 이런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내가 저들, 하나님이 책망하시는 ‘장로들, 고관들’보다 내가 나으니까 나에게 말씀하시고, 예언도 주시고, 선지자로 사용하시는 거겠지.”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진짜 하나님의 현현을 경험한 ‘이사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들도 나도 다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부정한 사람들입니다.”라고 말입니다. (5절)


3. 하나님을 만나 ‘죄악된 자신의 영적 실존’을 고백하고 엎드린 자에게만 ‘죄사함의 은혜’가 임합니다. 그것이 6~7절입니다.

여기서 “스랍”의 의미를 좀 더 살펴봐야 합니다. 2절과 6절에 기록된 ‘스랍(세라핌:Seraphim)’을 천사 중의 하나로 알고 끝나서는 안 됩니다.

“스랍”은 ‘태우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사라프’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즉, “스랍”은 ‘불태우는 자’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션지자에게 “스랍”을 보게 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죄인임을 깨닫고, 인정해라. 그 죄는 오직 내가 불태움으로 제하여 버릴 수 있다. 그렇게 너는 오직 대속의 은혜로 사는 존재이다.”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마음으로 8절을 보십시오. “나를 보내소서”는 이사야가 사명에 불타오르는 자신감으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무지 고개들 수 없는 두려움과 감격으로 하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9~13절은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전적 주권’입니다. 인간의 어떠함(의로움, 선행, 착함)이 구원의 요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베풀어 주시는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제발, ‘교만하지 말라’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남겨 두시는 그루터기, 거룩한 씨’는 ‘인간 남은 자’들이 아닙니다. 신앙 잘 지켜서 포로로 끌려갔다 돌아오는 ‘남유다 사람’이 아닙니다. 요즘 어떤 이단들이 주장하는 ‘남은 자(렘넌트)’가 아닙니다. ‘그루터기, 거룩한 씨’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것이 끊어졌을 때, 모든 것이 끝난 것같은 절망 가운데 ‘그루터기 속에 숨어 있는 거룩한 씨의 생명력’을 볼 수 있는 사람만이 ‘그 속에 예수님의 생명’을 품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인줄 믿습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었던 모든 것이 불 태워짐을 당하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소망입니다. 십자가에서 자아가 죽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다시 살아남의 시작입니다. 그루터기에서 솟아난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삶을 이끌어가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Comentários


© 2017 My Father's Church of NJ.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