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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일 2020년 수요일 묵상

작성자 사진: Hyung YunHyung Yun

본문: 베드로전서 1장 1~12절



1. 베드로 사도가 기록한 편지(성경)인 ‘베드로전서’의 주제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세상의 현실을 살아가는 신자가 겪는 삶’입니다.

이런 신자의 삶을 말할 때, ‘고난, 핍박, 박해 등’의 단어가 들어가면 더 다가올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의 내용을 봤을 때, 기록 당시 ‘오늘날 터키 북동부 내륙 지역인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 지역에 초기 기독교에 대한 국지적 박해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박해, 핍박, 고통, 고난’을 너무 부각시키면 자칫 ‘박해와 고난 등’을 ‘종교 무용담’처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누가누가 박해와 고난을 더 받고, 잘 견뎠는지’를 경쟁하듯 드러내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 사도는… 고난의 특별함보다 고난 가운데 함께 하시는 ‘예수님’, 그럼에도 우리가 끝까지 붙들어야 할 진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2. 그래서 시작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된 선택과 구원’을 간략하지만 정확하게 선포합니다. 그것이 2절입니다. 1~2절의 단 한 문장 속에 문안인사와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의 진리가 완벽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3~6절은 ‘아버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찬송입니다. 이것은 ‘종교적 내용이 담긴 편지의 형식’이 아닙니다.

2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깨닫고, 붙든 베드로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영혼의 찬양’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마다 이런 감격으로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런 감격, 감사, 찬양이 임하길 기도해야 합니다.

3절의 “산 소망”은 ‘생명이 있는 소망’이라는 의미입니다. 4절의 기록처럼 ‘썩지 않는 소망, 쇠하지 않는 영원한 소망, 하늘에 간직된 소망’입니다. 사람이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안 ‘바라는 어떤 것’에 관한 ‘소망’은 육신으로 바라는 것이기에 ‘썩고, 쇠합니다. 땅에 혹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영원한 생명의 소망’은 완전히 다릅니다. 죽어서 썩을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될 수 없는’하늘에 속한 소망’입니다.

이 ‘하늘에 속한 소망, 천국을 향한 소망’이 우리를 보호하는 진정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절대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신적 능력으로 채워지는 땅의 것들’이 우리를 보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걱정, 근심, 고난, 아픔, 고통에서 건지는 참 능력은 ‘하늘 소망’입니다. 바로 이 진리를 5~6절에 기록했습니다.

7절의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믿고 있는 나의 믿음의 어떠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진리의 확실함’입니다. (흔히 말하는 어떤 사람의 ‘믿음의 좋고 나쁨’ 또는 ‘큰 믿음, 작은 믿음’ 따위가 아닙니다.)

8절과 10~12절은 ‘예수님을 직접 보지 않았지만,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사도들)에 의해 전해진 복음을 믿는 ‘초대교회 성도들’에 대한 격려입니다.

또한 9절은 가슴에 잘 담아야 합니다. ‘믿음의 결국, 믿음의 결과물’은 ‘기도의 응답, 이 땅의 축복 유무’가 아닙니다. ‘영혼의 구원’입니다. ‘하늘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 저는 오늘 본문을 바라보며 “예수님을 육신의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지만, 예수님 안에 있는 ‘산 소망, 생명의 소망’을 붙들게 하심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다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결국을 이 땅의 것, 엉뚱한 것을 얻기 위한 ‘종교적 신념에 바탕한 노력’으로 이해하지 않고 ‘영혼의 구원’이라는 것을 다시 붙들게 하심에 감사했습니다.”

자주 말씀드리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것’은 ‘최고의 신적 존재’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신적 존재가 기뻐할 종교적 행위를 열심히 함으로 ‘신적 존재의 초월적 능력’을 얻어 ‘현세와 내세’에 내가 바라는(물론, 신의 뜻으로 포장된) 것들을 얻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구별이 안 되면, ‘위로부터 임하는 선물로 주어진 믿음’이 아니라, ‘인간의 신념에서 출발한 믿음’으로 예수님을 이용하는 종교생활의 굴레에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십자가에 나의 ‘썩은 자아’가 못 박혀 ‘생명의 소망’으로 다시 회복되길 간절히 기도하며 오늘 본문을 다시 묵상하십시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하늘의 유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소망’ 안에 거하시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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