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고린도전서 2장 1~16절
1.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모든 문제 해결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여기서, 늘 조심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십자가 복음’의 진리는 ‘무속적 의미의 신령한 능력’이 아닙니다. ‘신적 능력을 빌어 축복이라는 이름의 이것 저것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종교 도덕 혹은 윤리’는 더더욱 아닙니다.
‘십자가 복음’은 내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님이 나 대신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의 지혜와 방법으로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면 해결된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도입부(1~2장)에서 반복적으로 ‘세상의 지혜’와 완전히 반대인 ‘십자가의 역설적 진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아무리 성경을 봐도 엉뚱한 해석을 합니다. 정말 잘 해봐야 ‘고등종교 윤리’에서 머물게 됩니다.
2. 그냥 덮어놓고 1~5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면 곤란합니다. “전도는 사람의 말과 지혜로 하는 것이 아니다. (1절) 십자가만 전하면 된다.(2절) 사람은 약하고, 두려워 할 떄도 있지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면 된다.(4절) 믿음으로 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5절) 할렐루야!” 이렇게 이해하면 너무 단편적입니다.
특히, 2절을 가만히 보십시오. 이것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만 전했다. 나는 그것 밖에 모른다.”라며 ‘전도의 방법론’으로 이해해서 ‘전도할 때는 무조건 예수님의 십자가만 고래고래 외치면 된다.’라고 억지부리면 안 됩니다. (특정 전도 방법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 속에 담긴 뜻을 좀 더 부각하려는 것입니다.)
원어를 부각시켜 해석하면 이렇게 됩니다. “나는 결정했다. 너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너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입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런 저런 분파로 갈라져 싸우면서 나에게 누가 옳고 그른 지 판단해 달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나의 유일한 관심은 ‘각 자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입니다. 나는 과거 당신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던 모습만 생각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더니 예수로 하나됨을 경험한 여러분의 모습만 기억합니다. 그러니 여전히 나는 이 문제 앞에서 ‘가장 먼저 자기 생각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습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6~16절까지 십자가에 사람 생각 못 박고,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라고 말합니다.(6~15절)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합니다.(16절)
여기서 8절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는 과거의 이야기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현재 진행입니다. “여전히 당신들이 자기 생각 십자가 앞에 내려놓지 못하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3. 오늘 본문을 깊이 묵상해보면, ‘가장 영적인 것’은 ‘십자가에서 내가 죽는 것’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렇게 내가 아닌 ‘예수님이 내 안에 사시는 것’만이 진리라고 ‘아멘, 아멘’하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 신령한 성령의 사람이 되고 싶으십니까? 답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에 분명히 있습니다. 내가 십자가에서 죽으면 나를 통해 예수님이 드러납니다. 그저 나는 성령의 통로가 되고,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나를 통해 일하십니다.
어쩌면, 통로는 모릅니다. 아무것도 모릅니다. 대체 나를 통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어제 말씀처럼 자랑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몰라서도 못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었을 뿐인데, 나를 통해 일어난 수많은 성령의 일을 모르는 축복, 모르고 누리는 축복이 임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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