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고린도전서 16장 13~24절
1. 오늘로 ‘고린도전서’가 마무리됩니다. 7월부터는 ‘베드로전서’와 ‘이사야서(1~39장)’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눕니다.
‘고린도전서’라는 편지를 마무리하는 오늘 본문을 세분하면 네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3~14절은 마지막 권면(격려에 더 가까운)입니다. 15~18절에서는 스데바나 집 사람들에 대한 칭찬과 사람들이 그를 인정해 줄 것을 당부합니다. 19~21절에는 교회들의 문안(인사)를 전합니다. 22~24절에서는 예수님을 더욱 사랑할 것을 당부하고, 축복의 기도를 합니다.
2. 사도 바울은 마무리에서 격려와 명령이 섞인 간결하고 강한 권면을 합니다. 13, 14절에 잘 나타납니다.
13절의 “남자답게”는 단순한 남성적 표현이 아닙니다. 원뜻은 ‘용감하게, 담대하게’입니다. 14절의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는 것’은 13절을 전제로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굳게 서서 담대하게 살아가는 사람만이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할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 행함’은 ‘내가 아닌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시는 삶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어떤 좋은 성품으로 행하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13~14절은 연결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 14절의 ‘사랑으로 행함’은 내가 죽어야 가능합니다. ‘십자가에서 내 자아 죽어야, 예수님이 나 대신 사신다. 행하신다. 역사하신다.’라는 믿음의 확신이 들어와야 가능합니다.
그렇게 담대하게 주님을 신뢰하면서 십자가에 내가 나의 주인 노릇 하려는 모든 것을 못 박아야 가능합니다.
그러면, 사랑 그 자체이신 예수님이 나를 사랑으로 이끄십니다. 강제가 아니라, 사랑으로 녹여 나를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싫으면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서 내가 아니라 예수님으로 사는 삶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3. 이 마음으로 마지막 22절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를 보십시오. 네, 절대 저주를 퍼붓는 것이 아닙니다. 염려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나 대신 사시는 예수님! 내가 나의 주인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인 된 삶!이 싫으면 당연히 ‘구원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저주를 미래에 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것입니다.
22절을 헬라어 원어에 더 가깝게 번역하면 “만약, 누구든지 주인(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는 저주의 상태이다.”입니다.
저는 고린도전서를 마무리하며, 우리 주님의 교회 성도님들이 15절의 ‘그리스, 아가야 지방의 첫 열매’였던 ‘스데바나의 집(가정)’같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그냥 교회 다니는 사람, 교회라는 모임에 출석하는 사람이 아니라 믿습니다. 예수님의 주인됨과 다스림을 진정으로 기뻐하는 하나님의 자녀라 믿습니다.
그렇게 18절의 고백처럼 ‘하나님과 믿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성도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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