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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2020년 월요일 묵상

작성자 사진: Hyung YunHyung Yun

본문: 고린도전서 16장 1~12절



1. 이제 고린도전서의 마지막 16장으로 들어왔습니다. 오늘은 1~12절을 살펴봅니다. 1~4절은 연보(헌금)에 관한 내용입니다. 5~9절은 바울의 고린도 방문 계획과 현재 상태, 10~12절은 디모데와 아볼로의 근황에 관하여 기록합니다.

몇 차례 말씀드렸습니다. 장, 절의 구분은 성경을 읽고, 연구하기에 편의를 주기 위해 후대에 나눈 것입니다. 유대 전통에서 구약을 문단형태로 나누는 것도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숫자로 표기한 것은 16세기 경입니다.

이 설명을 드리는 이유는 자칫 ‘장,절’의 구분으로 인해 성경의 내용을 따로 이해하게 됩니다. 앞뒤 내용을 연속이 아니라, 단절 속에서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되면 진짜 의미는 사라집니다. 특히, 편지 속에 담긴 마음은 사라집니다. 그렇게 교리화, 도식화, 공식화 됩니다.


2. 그 대표적인 것이 오늘 본문 1~4절에 기록된 ‘연보(헌금)’에 관한 것입니다. ‘연보(헌금)’은 종교 세금이 아닙니다. 종교적 의무가 아닙니다. 많고 적음에 의한 종교 헌신의 문제도 아닙니다.

에수님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의 감격에서 시작됩니다. 따라서 적어도 15장에 기록된 ‘부활’과 연결됩니다. 십자가 복음의 진정한 의미 속에서 봐야 합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나였던 삶에서 내 자아는 날마다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으로 사는 진리와 연결됩니다.

‘연보’로 번역된 헬라어 ‘로게이아(logeia)’는 ‘모으는 것’의 의미인 ‘collection’입니다. 그냥 모으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님의 생명이 들어온 이후 달라진 삶, 전인격’으로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으로 드려진 것’을 ‘교회 공동체가 모은 것(logeia)’이 ‘연보(헌금)’입니다.

또한 2절의 “수입에 따라”는 ‘수입의 많고 적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신 은혜, 베푸신 은혜에 따라 진정과 기쁨으로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매주 첫날에”는 ‘주일 예배를 드릴 때’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 후 첫날 부활하신 이후로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날은 안식일(토요일)이 아니라, 주일(일요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요일, 날짜’로의 ‘주일 예배’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감동이 임했을 때 즉시 드리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머뭇거리면 사람의 생각이 섞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는 사람의 시선과 상관없이 하나님과의 일대일의 관계 속에서, 내 영혼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기쁨으로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정말 다행스럽게 주님의 교회를 섬기면서 경험하지 못했지만, 과거에 안타까운 경우를 종종 봤습니다.

소위 ‘찔러주듯’ 사람(목회자)에게 주는 경우와 자신의 헌신?을 ‘드러내듯’ 교회 공동체에 헌금으로 내는 분들을 봤습니다. 체면치레로 ‘저울질하듯’ 헌금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기대심리(이렇게 드리면, 저렇게 채워 주시겠지)로 드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참 안타까웠습니다. 연보(헌금)은 순수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하나의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과 깊은 영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람의 시선, 생각이 섞이는 순간 ‘연보(헌금)’은 ‘종교생활의 의무 혹은 회비’ 수준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연보(헌금)’은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구원에 대한 감격의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연보(헌금)’에는 “내 삶 구석 구석의 작은 일조차 하나님의 세밀한 간섭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전부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라는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영혼과 전인격을 함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어떤 것을 드릴 때마다 다윗의 고백이 떠오릅니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분이니이다”(역대상 29:14)

‘감히 이럴 수 없는 내가 예수님의 생명으로 이럴 수 있었다’는 감사와 감격이 삶의 열매로 더 드러나고, 드려지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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