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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6일 2020년 금요예배 묵상

작성자 사진: Hyung YunHyung Yun

본문: 고린도전서 15장 20~34절


1. 어제 본문에 이어 부활에 관한 사도 바울의 고백이 이어집니다. 58절에 이르는 고린도전서 15장은 상당히 깁니다. 그 긴 내용의 대부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것입니다.

이렇게 긴 이유는 ‘부활의 신비’를 사람의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하는 것에 한계가 있습니다. 게다가 각 자의 방식으로 부활을 이해하거나, 부활을 인정하지 않고 알아서 십자가 복음을 이해하며 종교 생활하는 사람이 그 때도 지금도 있습니다.

부활에 관한 내용이 기록된 ‘고린도전서 15장’을 일일이 이해하며 읽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내일 읽으실 46~49절의 말씀처럼 ‘아담의 원죄’에 오염된 우리는 ‘흙의 생각, 육신의 생각, 사람의 생각’으로 ‘신령한 사람, 영의 사람, 하늘의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이해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해를 못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생명으로 거듭났으나, 여전히 육체를 가지고 있는 ‘인간의 한계’를 철저히 인정하기에 십자가 앞으로 가면 됩니다. 십자가에서 나는 죽고, 예수께서 나 대신 사시면 됩니다. 예수님의 시각, 하늘의 관점으로 부활을 다시 바라보면 됩니다.


2. 그래서 사도 바울은 20~22절을 통해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모두가 범죄하여 사망에 이른 것과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십자가)’으로 모두가 삶(생명)을 얻은 것’을 선포합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믿는 자의 부활’이 있음을 23절에서 설명합니다. 즉, “20~22절을 믿고 있습니까? 그럼, 23절도 당연히 믿어지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24~28절에서 ‘예수님의 구원자 되심, 통치자 되심, 주관자 되심’을 선포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미’ 이루어 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증거가 되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믿는 자의 부활에 대한 ‘약속(언약), 증거’가 된다는 것이 녹아 있습니다.

여기서 29절이 좀 갸우뚱 하실 겁니다. 해석에 있어서 약간 논란이 있습니다. 이것은 죽은 자를 위해 세례 받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부활을 믿고 담대히 죽은 (잠든) 성도들을 보고, 불신자들이 세례를 받고 예수님을 믿거나, 믿는 자들도 담대히 부활의 능력을 붙들고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29절을 풀어내면 그런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야 30~32절이 연결이 됩니다.


3.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으로 죽음, 고난, 환란, 고통을 이겼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32절)

무엇보다 ‘선한 행실, 십자가의 의로움에 합당한 삶’의 원동력이 ‘예수 부활의 생명’이라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33~34절)

그렇습니다. 내가 의로워지고, 내가 선해지기 위해 행하는 것은 ‘자기 종교행위’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사실은 ‘자기 종교생활’입니다.) 내가 아닌, 나 대신 사시는 예수님이 행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택한 한가지 일이 있습니다. 네, 31절입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매일 못 박혀 죽어야, 매일 부활하신 주님이 나 대신 산다는 말입니다.

네, ‘미래적 부활’에 참여하기 위해 ‘현재적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고

‘생명’을 위해 ‘죽음’을 택하는 것, ‘얻음’을 위해 ‘버림’을 택하는 것, ‘승리’위해 ‘패배’를 택하는 사람이 ‘십자가의 복음, 부활의 진리’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약속(언약) 안에서 성취될 ‘미래의 부활’을 바라보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오늘 십자가에서 ‘현재적 죽음과 부활’을 경험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참 생명으로 내 안에 살고 계심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나의 죽음이 유익임을 날마다 고백하게 됩니다. 기쁨이 됩니다. 그렇게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 안에서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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