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6편 1~10절
1. 시편 6편은 시편에 등장하는 7편의 참회시(6편, 25편, 32편, 38편, 51편, 130편, 143편)’ 중 첫번째 입니다. ‘참회시’는 130편을 제외하고 모두 다윗이 기록했습니다. (130편은 표제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입니다. 물론, 다윗이 기록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윗이 참회시를 많이 기록했다고, 죄를 많이 범했다는 등식을 세우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물론, 다윗은 밧세바와 간음, 우리아에 대한 살인 교사를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이것에 대한 처절한 회개, 돌이킴이 있었습니다. (‘시편 51편’은 밧세바 사건에 대한 참회시)
무엇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다윗이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켰을 때, 용서받았습니다. 회복되었습니다. 건짐 받았습니다. 대신 이 땅에서 감당해야 할 ‘범죄함의 열매(삶의 결과물)’는 감당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럼에도 여전히 다윗을 사랑하셨습니다. 다윗이 자신의 범죄로 말미암아 걸어가는 인생길에 여전히 동행하셨습니다. 그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되어 주셨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뻔뻔함’으로 자신의 죄악을 대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범죄함을 핑계로 ‘극한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의 죄에 대한 ‘냉정하고, 철저한 반성’에 기반하여,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철저히 신뢰’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2. 오늘 본문, 1~3절을 통해 범죄한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두려워하며, 무서워 떠는지 알 수 있습니다.
4~7절은 범죄함의 고통에서, 정죄 당하는 고통에서, 범죄로 말미암은 영혼의 슬픔과 절망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구하는 다윗의 영적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8~10절은 다시 영혼의 눈을 들어 ‘지금 상황’이 아니라, ‘회복시키실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고, 기도하며, 확신하는 다윗의 모습이 보입니다.
네, 다윗은 ‘영적 균형’이 있었습니다. 1~3절, 가장 먼저, 죄를 범한 자신의 악함을 인정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4~7절, 범죄한 영혼의 상태가 어떠한지 철저히 깨닫고 있습니다.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지 않습니다. 8~10절, 철저한 회개와 돌이킴이 있을 때, 반드시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이런 ‘영적 균형’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놓쳐서는 안 됩니다.
4. 우리는 여기서 조금 더 살펴볼 것이 있습니다. 4절입니다.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를 보십시오. “여호와여 돌아와!”라고 기도하는 다윗의 모습… ‘눈물이 침상을 띄울 정도로 울며’ 기도하는 다윗의 모습…을 마음으로 그려보십시오.
다윗이 왜 이렇게 기도했을까요? 다윗이 범죄함으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었길래? 다윗이 회복하길 바랐던 것이 무엇이었길래? 저도록 간절히 기도했을까요?
그것은 ‘여호와의 임재’입니다. “여호와여 돌아와!”입니다. 밧세바를 범했음에도 여전히 왕의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회개의 목적이 아닙니다. 자신의 범죄로 자신이 누리는 축복, 재산, 유명세, 기득권 따위가 사라지는 것 때문에 안절부절하며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범죄함의 결과로 저주… 일명 ‘하나님의 치심’이 임할까 두려워서 반성(성경이 말씀하는 회개가 아닌…)합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의 영적 반응이 아닙니다.
진짜 하나님의 자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나의 범죄로 ‘주님의 임재, 주님과 동행, 주님과 교제’가 막힐까 두려워합니다. 끊어질까 무서워합니다.
이게 다입니다. 더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거둬 가실까, 안 거둬 가실까? 치실까, 안 치실까? 주실까, 안 주실까?” 따위는 관심 밖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우리의 심령이 회복해야 할 것은 이런 다윗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순전한 마음, 순수한 사랑, 순결한 믿음’입니다.
말씀을 통해 저와 여러분의 심령이 성령의 깨끗하게 하심으로 정결케 되길, 그렇게 주의 임재가 더 강하게 임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