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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9일 2020년 화요일 묵상

본문: 시편 18편 16~29절

1. 같은 주제로 기록된 하나의 시편을 여러 번 나눠서 살펴볼 때 어려움이 있습니다. 같은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편 18편의 주된 흐름인 ‘여호와 하나님의 건지심, 보호하심’은 어제 살펴본 ‘초반부’에 다 나왔습니다.

그렇다고, 한절 한절의 기록을 ‘단순한 반복’이라고 쉽게 이해하고 넘어가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의 살려주심, 건져주심, 보호해주심’에 관하여 반복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다윗의 인생 전체가 ‘대적의 위협, 사탄의 유혹’ 무엇보다 그 위협과 유혹에 흔들리는 자신과의 싸움이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며 치열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 싸움은 단회적, 일시적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일생에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렇게 평생을 ‘지속적이고, 반복적이고, 극적인 여호와의 구원’을 경험했기 때문에 50절에 이르는 길고 다양한 표현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2. 특히 16~19절에 기록된 여호와 하나님의 건지심에 대한 묘사는 ‘출애굽’을 연상시킵니다. 16~18절은 ‘홍해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19절의 “나를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는 ‘광야, 시내산’으로 인도하신 영적의미를 기억하게 합니다.

무엇보다 17절의 “그들은 나보다 힘이 세기 때문이로다”에서 ‘신명기 7장 7절’의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라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왕이 된 것, 사울의 칼을 피해 마침내 왕이 된 것에 대해 스스로의 어떠함에 공로를 돌리지 않습니다. 자신은 비천함, 못남을 인정합니다. 대적(사울)보다 열등하고,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옛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신 이유와 자신을 택하신 이유가 같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다시 회복되어야 할 마음은 ‘다윗의 이 마음’입니다. “죄인인 것은 인정하긴 하지만, 그래도 저들보다는 그럴 듯하기 때문에 날 택하신 것 아닙니까?”라는 종교적 겸손을 가장한 자기 자랑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27절의 말씀을 깊이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렇게 ‘심령의 가난함, 낮아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낮은 심령에 위로부터 임하는 구원, 은혜, 회복, 사랑, 능력이 흘러내립니다.

3. 사실, 오늘 본문 25~27절을 보면서 예수님의 말씀 ‘산상수훈’이 떠올랐습니다.

“자비로운 자에게는 주의 자비로우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25절) = “긍휼히 여지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5:5)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26절)=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은 낮추시리이다”(27절) =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5:3)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대체로 ‘뭔가 꽉 찬 것… 가득함, 뿌듯함, 채워짐’을 느끼며 살고 싶어합니다. 물론, 말은 ‘예수님으로 가득한 뿌듯함’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실제는 ‘예수님을 통해 이 땅의 누림과 내 자아의 든든함을 위해 채워지는 것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이 추구하는 ‘가득함, 뿌듯함, 채워짐’은 십자가 앞에서 내 자아를 ‘쏟아 놓음, 비워 버림, 못 박음’을 통해 경험하는 ‘영적 충족, 충만’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통해 경험하는 ‘심령의 곤고함, 가난함’없이 ‘채움’을 추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의 소유, 하나님을 봄, 긍휼히 여김 받음’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다윗은 ‘곤고함, 비천함, 가난함’을 속에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으로 채워지는 것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가장 곤고한 영적 고독의 순간에 하나님과 가장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시길, 그렇게 밑바닥부터 채워지는 은혜의 채움을 경험하시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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