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15편 1~5절 1. 오늘 본문의 시작은 다윗의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그 내용(1절)은 “누가 당신의 장막에 머물 수 있습니까?”입니다. 그렇다면, 이후에 등장하는 2~5절은 ‘여호와의 장막(tabernacle), 여호와의 성산(holy mountain)’에 머물 수 있는 사람의 자격일까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아닙니다. 만약 2~5절이 ‘여호와의 장막, 여호와의 성산’에 머물 수 있는 조건이라면, 그것을 충족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설령, 그 조건을 충족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과 동거, 동행’으로 표현되는 ‘구원의 조건’일 수 없습니다. 물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2~5절에 나타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렇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삶의 열매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늘 말씀드리는 것처럼, ‘인간의 알량한 의로움’이 도를 넘어 ‘자기 교만’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십자가 앞에서’ 조심 또 조심하는 것입니다.) 2. 시편 15편을 고백하는 다윗이 품은 마음의 자세를 오해하면 안 됩니다. 혹시라도 다음과 같은 식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음, 가만히 내 삶을 돌아보니, 결국 제가 ‘예루살렘’을 되찾았습니다. 마침내 통일왕국을 이룬 것은 접니다. 저만 성전건축의 비전을 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보니, ‘여호와의 장막, 성산’에 머물 자가 누구겠습니까? 저, 아니겠습니까? 또 저처럼 사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쓰셨다. 나를 쓰신 것을 보니, 나를 인정하신다.”라는 ‘영적 교만의 함정’에 빠집니다. 성경 속에 드러난 인물들을 쓰신 것과 나를 비교합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다윗입니다. 사람의 시각에서 성경을 바라보는 이 왜곡된 시각을 깨트리지 못하면, 오늘 본문도 “하나님의 장막, 성산에 머무르려면 2~5절의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라는 결론 외에는 나올 것이 없습니다. 3. 이제, ‘나의 생각, 나의 관점, 나의 이해’ 수준을 넘어서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다윗의 마음으로 보십시오. ‘다윗의 마음과 나의 마음을 낮추시는 성령의 역사’를 구하며 읽어보십시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라는 다윗의 질문 속에 답이 있습니다. 네! 주의 장막에 머물 수 있는 분, 주의 성산에 머무를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히브리어 원어 아니, 영어만 봐도 ‘머무를 자’라는 것이 ‘어떤 인물,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여호와여! 누가 머뭅니까, 그 장막에? 누가 살고 있습니까, 그 거룩한 산에?”입니다. (한글 번역의 ‘머무를 자(者), 사는 자(者)’라는 번역 때문에 헷갈리게 된 것입니다. ) 따라서 2~5절을 온전히 행하실 수 있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뿐입니다. 실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친히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특히, 4절의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를 보면서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마26, 막14, 눅22)’가 떠올랐습니다. 십자가의 고난, 죽음 앞에서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8~39)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과의 서원(약속)을 해로울지라도’ 지키셨습니다. 그렇게 ‘서원’을 지키심으로 우리는 ‘값없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대속의 역사’를 믿을 때, 예수님의 의로움이 아무 조건 없이 우리에게 넘어왔습니다.” 이것을 가만히 묵상하면,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라는 5절의 말씀이 이해가 되실 겁니다. 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대속의 은혜, 진정한 의로움’을 넘겨주시는 것은 조건이 없습니다. 사람이 ‘이자를 바라고 돈을 빌려주는 것’처럼,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있어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닙니다. 이제,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로 끝나는 시편 15편이 더 다가오실 것입니다. 1절이 이루어지기 위한 조건으로 2~5절을 이해했다면, ‘나의 불완전함’ 때문에 늘 흔들립니다. 그러나, 2~5절의 말씀을 그대로 이루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여호와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 하늘 장막, 하늘 성소의 참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든다면 ‘영원히’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철저히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낮은 마음으로 봐야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 참 소망’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흐르는 ‘그리스도 생명’이 저와 여러분의 삶에 흘러 넘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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