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나훔 2장 1~13절
1. 나훔서는 요나서와 함께 ‘니느웨(앗수르 제국의 수도)’을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두 예언서에 나타난 니느웨의 앞날은 매우 대조적입니다. 요나 선지자는 니느웨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인애와 은혜를 선포하였지만, 나훔 선지자는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와 진노를 말합니다.
니느웨는 앗수르 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산헤립’ 왕에 의해 B.C 701년, 제국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산헤립’은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하다가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18만 5천명의 군사를 하룻밤 사이에 잃고 돌아간 비운의 왕이었습니다. 참조, 열왕기하 18~19장)
앗수르 제국은 매우 잔인한 국가였습니다. 피정복국가를 두려움과 공포를 바탕으로 혹독하게 통치했습니다.
‘나훔서’ 전체에 잔인하고, 혹독하고, 끔찍한 비유적 표현은 ‘앗수르 제국’이 다른 나라를 정복할 때 행했던 것을 다시 묘사한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해 잔혹한 보복(?)의 칼을 휘두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피정복국가에 행한 대로 되갚음(?)을 당하는 것입니다. 아니, 되갚음도 이라는 표현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냥 본 대로, 배운 대로, 당한 대로 하는 것입니다.
2. ‘산헤립 왕’ 시대에 정점에 이른 ‘앗수르 제국’은 약 100년 뒤인 B.C 612부터 힘을 잃어 가기 시작했고 B.C 610~605년 사이 ‘하란’과 ‘카르케미시’가 ‘바벨론’에 의해 함락되면서 완전히 멸망합니다.
역설적이게도 ‘바벨론’은 원래 ‘앗수르’에게 지배당하던 국가였습니다. ‘앗수르’의 잔인한 통치 아래 있었습니다.
‘나훔서’ 전체에 기록된 무시무시한 침공과 멸망, 압제를 당한 나라가 ‘바벨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바벨론’이 똑같이 ‘앗수르’를 멸망시켰습니다.
이런 ‘앗수르 제국’을 향하여 하나님은 약 50년 전(나훔서의 기록 연대는 B.C663~612년 경입니다.)에 ‘나훔’ 선지자를 통하여 경고하신 것입니다.
“너희들 계속 그러면 너희가 행한 잔혹한 수법과 똑같이 멸망 당한다. 제발 멈춰라. 돌이켜라. 그러지 말아라.”입니다.
3. 우리는 자꾸만 ‘앗수르, 바벨론 등’을 악마 취급합니다. 위대한 이스라엘을 건드렸다가 위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적대적 세력으로만 생각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과 구원과는 아무 상관없는 괄호 밖의 존재, 버림 받아야 할 존재로 여깁니다.
그러면, ‘요나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아, 그건 딱 한번의 기회만 주어진 것입니까? 이방인이지만, 특별히 딱 한 번 정도는 기회를 주지만, 더 이상은 안 된다는 손톱만큼의 긍휼입니까?
만약,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편협 그 자체로 왜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베푸신 긍휼과 사랑, 구원을 자기에게만 유리하고, 관대하게 적용하려는 약아빠진 생각입니다. 마치, ‘사마리아 여인’을 보면서 ‘그녀는 반드시 부도덕해야만 해!’라는 자기 도덕성에 빠진 그릇된 자기 판단, 자기 확신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똑같이 니느웨(앗수르 제국) 사람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요나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 그때 베풀어진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는 같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베풀어진 것과 같은 것입니다. 차등이 있을 수 없습니다.
경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돌아오라. 제발 그 길로 가지 말라.’는 메시지와 니느웨를 향한 애타는 부르심도 동일한 것입니다.
4.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훔서의 기록연대 (B.C 663~612) 입니다.이 시기는 그 유명한 ‘므낫세’의 통치 기간입니다. 남유다 아니 전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악한 왕이었던 ‘므낫세’가 이방인 보다 더 하나님을 반역하며, 다스렸던 시기입니다.
‘므낫세’는 아버지 ‘히스기야’와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심지어 ‘북이스라엘’은 숱한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 길로 달려가다 ‘앗수르’에 의해 이미 멸망(B.C 722년)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므낫세’는 또 가고 싶은 길로 갑니다. 더 악한 길로 갑니다.
여기서 하나만 더 생각해보십시오. ‘나훔’선지자의 선포가 ‘니느웨’ 사람들에게만 들렸을까요? 아닙니다. ‘나훔’을 통한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를 가장 먼저 들은 사람은 ‘남유다’ 사람들입니다. ‘므낫세’입니다. (게다가 ‘므낫세’는 친 앗수르 정책을 펼친 인물입니다.)
‘나훔서’에는 ‘요나서’처럼 “너는 일어나 ‘니느웨’로 가라.”는 명령이 없습니다. 즉, 이 경고는 남유다 사람들이 가장 먼저 듣고, 그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것입니다. 소문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입니다. (통신, 언론 등이 없는 시대입니다.)
말씀이 들려옵니다. 그 말씀이 제 심령을 비춥니다. 덮어버리고 싶을 때가 대부분입니다. 때론 ‘난 잘하는 것 같다’는 착각도 듭니다.
하지만, 결국 굴복합니다. 십자가 앞에 엎드립니다. 엎드려 벌벌 떨고 있었는데, 다시 일으키시는 경험을 합니다. 내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대로 행하시게 하는 은혜를 경험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나를 볼 수 있는 것처럼 축복이 없다는 것을 더욱 고백하고, 체험하시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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