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에스겔 40~42장 1. 오늘 읽고 묵상해야 할 본문이 깁니다. 에스겔 40~42장입니다. 이 본문을 다 이해하며 읽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에스겔을 전공한 신학자라도 성전의 설계도를 그림도 아니고, 글로 기록한 것을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현한 영상(bibliaprints.com)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물론, 한 번 영상을 봤다고 다 이해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몇 차례 보시고, 성경을 반드시 읽으신 뒤, 성경을 펴고 보시면 큰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2. 오늘 본문을 시작으로 에스겔서의 결론을 향해 달려갑니다. 특징이 있다면 마지막 47장까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입니다. 지난 번에도 말씀드렸 듯이 ‘성경 기록자’에게 임한 특별한 환상입니다. 요한계시록과 연결되는 환상입니다. 40장 1절에는 정확한 날짜가 있습니다. 에스겔은 이 ‘날짜’를 기록함에 있어서 두가지 기준으로 말합니다. 하나는 ‘에스겔’이 ‘2차 포로’로 끌려온 시점(25년째)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 함락(14년 째)’입니다. 여기서 ‘예루살렘 성 함락’ 기준을 언급한 이유가 있습니다. 강조입니다. 예루살렘 성의 함락은 ‘예루살렘 성전(솔로몬 성전)’의 파괴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성전 회복(재건)’의 환상이 강조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2~4절은 성전 회복의 주체가 ‘이스라엘 민족’ 혹은 ‘위대한 지도자(총독, 스룹바벨, 여호수아 대제사장, 학사 에스라)’ 즉 사람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삼줄(기준줄)’과 ‘측량하는 장대’를 가진 ‘놋같이 빛난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 계획, 설계, 의지, 뜻’에 따라 ‘성전 재건’이 이루어짐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성전)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지만, 마음(영혼)으로 생각하라”(4절)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대할 때, 분명 사람의 눈으로 읽고, 귀로 듣습니다. 그렇게 들어온 정보는 인간의 이성 체계에 의해 해석됩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네 마음으로 생각할 지어다!”입니다. 그냥 ‘마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회복된 영’입니다. 위로부터 임하는 ‘성령의 비춰주심’입니다. 읽을 때, 순간 떠오르는 내 머릿속의 그림을 지워야 합니다. 말씀을 잘 알수록, 말씀에 익숙할수록 더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또 십자가 붙들고 엎드려야 합니다. 말씀을 피하려는 본능, 내가 유리한대로 해석하려는 죄성을 못 박아야 합니다. 이런 죄악된 본성에 기울어진 나를 인정하고,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는(에스겔 36:26)’ 성령님께 굴복해야 합니다.
3. 이런 마음으로 오늘 말씀을 대하십시오. 그러면 성전의 규모 혹은 모양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역사 속에 재건될 ‘건물 성전’에만 국한하지 마십시오. 또한 ‘요한계시록’의 ‘새예루살렘’과 ‘새성전’역시 가시적 ‘건물, 장소’만으로 이해하시면 안 됩니다. ‘재건 될 성전’은 ‘각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이루어진 ‘완전한 대속, 완전한 거룩, 완전한 정결, 완전한 구원’으로 말미암아 ‘각 사람’이 ‘성전’으로 세워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은 ‘에스겔 37장’의 ‘마른 뼈 환상’과 연결해서 보면 그 의미가 더 확실해 집니다. ‘죽은 지 오래되어 말라버린 뼈’는 ‘바벨론에 의해 부서진 예루살렘 성전’과 연결됩니다. 에스겔 37장에서 ‘마른 뼈’를 하나님이 살리시는 과정, 즉 ‘뼈들이 연결되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가죽이 덮히는 것(에스겔 37:7~8) ‘은 ‘에스겔 40~42장의 ‘성전의 문, 기둥, 부속건물, 지성소, 제사장의 방, 성전 사면의 담’의 순서로 보여주시는 것과 연결됩니다. 무엇보다 ‘에스겔 37장’의 ‘되살림’의 마지막 ‘생기를 불어넣으심(에스겔 37:9~10)’과 ‘에스겔 43장’의 ‘여호와의 임재(에스겔 43:1~3)’이 정확히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 때로는 “성경이 이렇게 상세할 필요가 있을까? 이렇게 긴 이유가 무엇일까? 반복이 좀 과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다르게 생각하면 ‘하나님과 동행하길 스스로 거부한 인간, 그렇게 하나님과의 분리를 통해 죽음을 택한 어리석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회복’이 얼마나 철저하고, 치밀하고, 정확하게 계획되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사람이 예상하지 못한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이 예정하신 ‘우리 각 사람을 향한 십자가의 구원’을 붙들어야 합니다. 마침내 이루실 ‘영원한 회복, 생명,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봐야 합니다.(엡1:4~14)” 약속의 말씀, 능력의 말씀, 새롭게 하시는 성령님 안에서 우리의 모든 삶이 ‘진정한 성전’으로 회복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