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7일 2020년 월요일 묵상
- Hyung Yun
- 2020년 4월 27일
- 2분 분량
본문: 에스겔 45장 1~17절 1.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40~42장’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으로 다시 세워질 ‘새성전의 모형’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 에스겔 45장 1~17절은 새성전 주변의 땅과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에 관한 명령입니다. 이 본문을 보시면 여전히 쉽게 이해되는 내용이 아닙니다. 단위와 숫자가 여전히 생소합니다. 지적도 같은 도면 혹은 청사진으로 봐도 이해가 힘든 것을 글로 봐야 하니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속에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녹아 있습니다. 약간의 역사적인 배경을 알면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무너진 성전(솔로몬 성전)은 ‘왕’이 거주했던 ‘궁전’과 ‘겨우 한 담’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서에 보여주신 ‘새로운 성전’은 왕궁과 서로 분리됩니다. ‘왕들의 소유지’가 거룩한 땅 양 옆으로 정해집니다. 그 내용이 1~8절입니다. 2.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종교와 정치의 분리’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은 긍정적 측면에서의 ‘종교와 정치’가 일치된 사회였습니다. 성전과 궁전이 담 하나를 경계로 가까이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후임 왕들은 ‘종교를 정치의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했습니다. 종교적 권위를 차지하기 위해 제사장과 왕은 다툼을 벌였습니다. 때로는 서로의 이권을 위해 손을 잡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종교, 정치 기득권’ 세력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압제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압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 안타까운 하나님의 마음이 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통치자들(왕, 제사장 등)’이 종교를 이용하여 백성들을 현혹하고, 다스리고, 압제하지 못하도록 ‘새로운 성전’에서 분리시켜 버리십니다. 3. 물론, 분리시켰다는 것은 버림을 당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9~12절을 ‘통치자’들이 통해 회개하고 말씀하십니다. 버릴 것을 버리고, 끊어낼 것을 끊어내고 돌아올 것을 말씀하십니다. (9절의 “통치자들아 너희에게 만족하니라”를 칭찬으로 보시면 안 됩니다. 원어의 의미는 “통치자들아 됐다. 그만해라!”입니다.) 그리고 13~17절을 통해 제대로 된 예배, 정상적이 예배를 드릴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많은 양의 제물을 보란듯이 드리는 ‘종교행사’로서의 ‘제사, 예배’가 아닙니다. 진정한 ‘속죄’를 위한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보다, 17절에 “군주의 본분은 번제와 소제와 전제… 모든 정한 명절… 속죄제…감사 제물을 갖추는 것이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형식화, 종교화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4. 지금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상황은 내가 어떤 마음으로 예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있었는지가 그대로 드러나는 시기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종교화, 형식화’된 것은 아닌지 점검할 수 있는 시기입니다. 저와 여러분, 다시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이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 나는 어떤 삶의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하나님을 향한 내 마음의 상태는 어떤가? 나는 얼마나 예배를 갈망하고 있는가? 내가 지금까지 붙들고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나의 영적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에 대한 영적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이런 우리의 영적 자세를 보시고,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시65:4)라고 고백했던 순수한 다윗의 마음이 회복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믿음의 본문’을 잊지 않고, 십자가 붙들고 신실한 예배자의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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