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4일 2020년 화요일 묵상
- Hyung Yun
- 2020년 3월 24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0년 3월 28일
본문: 마가복음 10장 1~16절
1. 오늘 본문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마저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바리새인들 악함’ 아니, 종교성으로 포장된 인간의 본성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본문을 ‘이혼에 대한 가(可) 혹은 불가(不可)’를 말씀하신 것 만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혼 또는 결혼의 문제를 ‘종교 규율’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바리새인들’에게 ‘생명’의 시각, ‘한 몸 됨’의 관점으로 바라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결혼, 이혼’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계약의 관계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결혼, 이혼’의 문제는 ‘생명’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6~9절에서 ‘창조 때의 일’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배우자와 이혼이 가능한가, 불가능한가?’를 묻기 전, ‘배우자와 왜 결혼했는가?’를 다시 질문해야 합니다. (결혼, 이혼의 이슈가 있을 때, 목회자의 결론보다 주님 앞에 이 진지한 질문을 가지고 나가십시오. 기도하십시오.)
2. 그리고 오늘 본문 속에서 중요한 것은 ‘질문하는 바리새인들의 의도’입니다. 당시 ‘남자 유대인들’에게 4절의 ‘이혼 증서’는 공식적인 이혼을 위한 필수 요소였습니다. 이것을 써 줌으로 ‘남편’은 ‘이혼의 책임’에서 빠져나가려 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서 ‘이혼 증서’를 써주라는 것은 그 옛날 ‘아내, 여성의 인권’이 전무하던 시대에 ‘최소한의 장치’였습니다. 그냥 이혼해도 아무 힘이 없었던 ‘여성들’을 위한 장치였습니다.
예를 들어 ‘이혼’을 했는데, 이혼 직전 임신이 되었다고 가정해보십시오. 그 여인은 부도덕한 여자로 돌을 맞습니다. 태어난 아이는 ‘사생아’ 취급을 받습니다. 그때 이 ‘이혼 증서’는 ‘여인과 아이’를 보호하는 법적 장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이혼 증서’의 참 의미는 사라졌습니다. 남성들의 간악한 마음을 포장하는 ‘종교도구’로 전락했습니다.
이런 일이 그 때만 있었습니까?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십자가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등등을 자신의 ‘종교심 포장’과 ‘이 땅의 이익’을 위해 이용합니다. 나에게 유리하게, 남에게 불리하게 말입니다.
3. 진짜 ‘은혜와 복’은 말씀 앞에 자아가 벗겨지는 것입니다. 내 본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13절 이하의 어린 아이를 묵상해봅니다. 어머니 앞에서 벌거벗을 수 있는 ‘어린 아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심령이 임할 때 ‘어린 아이’처럼 ‘자아의 껍질’을 벗는 사람이 참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연약하고, 간악한 자아’를 벗을 때 가려주시는 ‘십자가 보혈의 은혜’가 임합니다. 이 놀라운 사랑이 오늘 더욱 넘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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