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레위기 11장 1~23절
1. 레위기 11~15장까지는 정결과 관련된 규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 본문은
사람이 섭취할 수 있는 음식과 관련된 것입니다. 음식과 관련된 정결은 단순히 종교적 의미만 포함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건강, 생명과 연관이 있습니다. (11~15장의 모든 정결 규례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의 시각으로 약 4,500년 전은 상상하기도 힘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그려보는 그 당시는 영화의 한 장면(?)일 뿐입니다.
특히, 대다수 한국인들의 정서 속에서 ‘부정(unclean)’의 의미는 너무 속된 것입니다. 일명 ‘부정 탄다’라는 의미는 ‘깨끗하지 못하다’는 의미보다 ‘재수 없다’라는 식으로 받아들입니다. ‘부정 타지 않는 무속적 종교행위’를 통해 신(god)을 달래려는 인간의 탐욕과 두려움이 근본에 깔려있습니다.
성경의 정결과 부정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살리기 위해, 생명 주시기 위해 ‘깨끗함’을 말씀하십니다. 깨끗하지 않은 것을 깨끗하게 하심으로 깨끗하신 하나님과 그렇지 못했던 인간의 하나 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 정결과 부정에 관해서는 크게 네가지 정도의 해석 방향이 있습니다. (물론, 어느 한 주장을 독단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좀 소개를 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첫번째는 타락 이전의 창조 질서와 관련된 것입니다. 처음 창조되었을 때는 채식이었고, 노아의 홍수 이후 육식이 허용된 것을 근본으로 한 해석입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동물 중에서 처음 창조된 본래의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는 짐승과 그렇지 못한 짐승을 구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두번째 해석 방향은 당시 고대 근동 지방의 이방 종교에서 행해지던 다양한 제사와 연관하는 것입니다. 이방신을 섬기기 위해 드리는 제물 또는 만든 형상들 중에 오늘 본문에 언급된 짐승, 새, 곤충 등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입니다.
세번째는 앞서 잠깐 말씀드린 것입니다. 사람이 음식을 먹는 것에 있어서 위생과 건강을 위해 주신 규례로 해석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마지막, 네번째는 기록된 본문 속에 윤리적, 상징적, 신비적 의미를 부여하여 해석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3절의 “새김질”하는 것은 ‘말씀을 되새김 질 하며 살아가는 성도의 삶’으로, “굽이 갈라진”이라는 표현을 ‘구별된 성도의 삶’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돼지(7절)”의 경우는 위선적 신앙인으로 비유합니다. 겉으로는 굽이 갈라진 구별된 성도처럼 보이지만, 말씀을 새김질하지 못하는 종교인을 말하는 것으로 봅니다. 13절의 새의 경우는 거의 대부분이 다른 짐승을 사냥하는 ‘맹금류’라는 것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성격 등이 공격적인 사람에 대한 비유라고 말합니다. (충분히 설득력 있습니다. 그렇게 적용하며 십자가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3. 이 네 가지의 해석 방향 모두 나름의 설득력이 있습니다.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받아들이지 않아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네가지 모두를 조화롭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첫번째를 잘 생각해보십시오. 가장 근본적입니다. 인간의 타락이 깨끗하지 못함의 원인입니다. 깨끗하신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든 삶은 오염되기 시작합니다. 위생개념이 아닙니다. 정결하신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자기가 주인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은 겉으로 아무리 도덕적이고, 깔끔(?)해도 죄로 물든 인생일 뿐입니다.
그러면 두번째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그런 인간이 만들어낸 각종 종교와 그에 따른 각종 짐승, 새, 곤충 등의 형상을 따라 만든 우상과 종교 행위들은 그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께 깨끗하지 못한 것이 됩니다.
당연히 위생적으로도 깨끗할 리가 없습니다. 이방 종교에서 행하는 제사 및 종교 행위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비위생과 문란으로 가득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 지를 오늘 말씀을 통해 윤리적, 상징적 해석을 통해 적용할 수 있습니다.
4. 다시 우리의 시선을 4,500년 전으로 옮겨봅시다. 그들은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무엇이 옳은 것이고, 그른 것인지… 무엇이 깨끗한 것인지, 그렇지 못한 것인지… 먹어도 되는 것인지, 아닌지…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뭐가 뭔지 도무지 분간 못하는 그들에게 ‘깨끗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생명과 직결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결과 관련된 규례, 깨끗함과 관련된 규례는 죄로 오염된 우리를 십자가의 피로 깨끗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게 하는 통로입니다! 종교적으로 사람을 구속(拘束restriction)하고, 속박(束縛restrain)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끌어 주심, 성령의 빛으로 비춰 주심, 십자가에 붙들리게 하시는 은혜가 없으면 내 맘대로 살다 그렇게 끝날 존재라는 영혼의 철저한 인정과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 맘대로 사는 것보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기쁩니다. 좀 빠듯한 것 같지만, 영원한 생명을 향한 소망을 품고 걸어가게 됩니다.
주님 손 잡고, 말씀에 붙들린 삶이 가장 기쁘다고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 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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