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8일 2022년 화요일 묵상
- Hyung Yun
- 2022년 2월 8일
- 3분 분량
본문: 요한복음 11장 38~46절
1. 요한복음 11장은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의 기록입니다. 이 표적(sign)이 가리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안타까운 사건들이 발생합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겠다고 기도하는 답답한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잊을 만하면 튀어나옵니다.
이런 표적도 못 알아들으니까 행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말해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믿지 않으니까 행하시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명(호흡)만 경험한 인간에게 육신의 생명을 다시 살리는 것을 통해 ‘나 예수가 진정한 생명의 주인’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생명 그 자체인 나 예수가 죽음을 이긴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할 것이다. 너희가 그것을 볼 것이다. 그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다.”라는 것을 미리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2. 또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육신의 생명을 돌려받은 ‘나사로’가 십자가에서 나 대신 죽으신 예수님과 그 분의 부활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걸로 끝입니다. 결국 몇 년 더 땅에서 사는 것 외에 그에게 허락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물론, ‘나사로’가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날 것이고, 거듭났습니다.)
오늘 이 본문을 읽는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본문이 가리키는 당장의 현상(죽은 자가 되살아남)에 머물지 않고, 우리 영혼의 시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까지 이어진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다다른 것입니다. 기적이 표적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붙들게 되는 것입니다.
3. 요한복음 11장 전체를 읽으시면서 ‘죽은 자’를 살리시는 예수님의 초자연적 능력(?)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이 없습니다.
이 사건 속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대화, 그들을 바라보며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가만히 묵상해보십시오. 천천히 반복해서 읽으십시오. ‘누가누가 더 나은가? 더 믿음이 좋은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마음에 들어 죽은 사람도 살리는 기적이 내 인생에서 펼쳐질까?’라는 사람 수준의 생각을 좀 내려놓고 읽어보십시오.
‘이 상황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무엇일까?’라는 당연하지만, 가장 하기 힘든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며 읽어보십시오.
38절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라는 기록을 보십시오. ‘사도 요한’은 어떻게 예수님 마음을 알았을까요? 네, 당연하게 예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예수님의 마음을 말씀하셨기 때문에 알았을 것입니다.
4. ‘예수님의 비통함’이 무엇이었을까요? 여러가지를 마음으로 그려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본문에 기대어 생각해본다면 크게 두가지 일 것입니다.
첫째는 ‘나사로에 대한 사랑’입니다(36절). 이것은 저와 여러분, 모든 인간을 향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죽은 존재! 육체의 껍데기 호흡을 생명으로 알고 있는 인간을 향한 예수님의 안타까움 섞인 사랑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려는 예수님의 비통함 섞인 사랑입니다.
두번째는 ‘그 중 어떤 이(유대인)’를 향한 아픔입니다(37절). 여전히 자기 생각에서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적어도 ‘요한복음 9장’의 사건부터 예수님을 따라다녔을 것입니다. 하지만,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의 말씀은 전혀 듣지 않았습니다. 들었다고 해도 지나가는 바람으로 여긴 모양입니다. “맹인의 눈도 뜨게 하면서 왜 빨리 와서 죽어가는 나사로는 살리지 않았느냐?!”라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나사로’와 가까운 사이였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마르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시자, ‘죽은 지 4일이 지났고, 썩어서 냄새 난다’라고 말합니다(40절).
‘마르다’와 ‘그 중 어떤 이’의 모습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우리의 모습입니다. 어디까지는 믿고, 어디까지는 믿지 않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 믿는 것 조차도 ‘이 땅에서 될 것 같고, 안 될 것 같은 일들’입니다.
5. 예수님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을 한심하게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다시 일깨워 주십니다. 알아들을 때까지 말씀하십니다. 40절을 묵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르다, 마리아, 나사로 등 예수님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당신께서 완성하실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밤이 새도록, 날이 밝도록 말씀하셨습니다.
40절에서 말하는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가 가리키는 것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땅의 현상, 육체의 현상’이 아닙니다.
“네가 믿으면 이미 죽은 너! 썩어서 냄새나는 네 안에 다시 살리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의 진정한 영광인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네 영혼 안에서 일어날 것이다.”입니다.
그렇게 45절을 보십시오. ‘많은 유대인들’은 ‘죽음을 보러 왔다가(19절, 31절) 생명을 본 사람들’이었습니다.
처음엔 각자의 생각, 각자가 생각하는 모습의 구원자를 만나러 교회에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성경이 말씀하는 예수님! 십자가에서 죽음을 이기시고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이 땅의 각종 현상이 아니라,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됩니다. 나머지 것은 하나님의 뜻, 방법, 시간표 안에 됩니다. 그 결과, 그 과정에 목매지 않습니다.
상황의 어떠함 너머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영혼의 눈을 뜨는 우리가 되길 기도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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