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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3일 2022년 수요일 묵상

작성자 사진: Hyung YunHyung Yun

본문: 시편 76편 1~12절


1. 시편 76편을 읽으면서 약간의 의구심(?)이 생깁니다. ‘위대하고 강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표현한 것은 좋은데, 이런 표현 밖에는 없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럴 때 우리가 생각해야할 것은 크게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21세기의 시각으로 기원전 혹은 수천년 전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옛날 사람들의 시각, 그 때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표현한 것과 우리가 사용하는 표현과 언어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표현의 어떠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 선하심, 아름다우심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끈질김(?)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먼저 찾아오셔서 맺으신 언약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2. 오늘 본문을 볼 때 몇가지 부분에서 원어의 의미와 그 속에 담긴 영적 의미를 다시 살펴봐야 합니다.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시인(아삽)이 만나고, 경험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1절의 표현에 주목해보십시오. ‘유다와 이스라엘에 크게 알려진 하나님의 이름’은 단순하게 ‘대단하고, 뛰어나고, 능력 있는 유명한(?)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임재, 동행, 함께 하심’입니다. 물론, “이런 위대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니 우리 건드리지 마라. 우리 대단한 민족이다.”라는 식의 마음 가짐이 아닙니다.

“이런 우리…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고, 여전히 우왕좌왕하고, 여전히 자아의 욕심에 쓰러져 허우적거리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먼저 찾아오셔서(임재)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시며, 대속의 은혜 언약(시내산 언약)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표현입니다.

3. 이런 마음을 품고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특히, 오늘 시편 같은 내용을 읽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린 아이 수준의 이해에 머물게 됩니다. 억울하고, 어렵고, 힘든 일 당하면 그저 부모에게 투정부리는 어린 아이… 엄마에게 날 괴롭고 힘들게 한 대상에게 복수(?)해달라고 떼쓰는 어린 아이 수준에서 이해하게 됩니다.

따라서 3~9절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막연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를 무시무시한 힘으로 꺾으시는 것을 상상하면 안 됩니다.

4절의 “약탈한”이라고 번역된 ‘tereph’는 ‘음식, 먹이’라는 뜻입니다. 그대로 직역하면 ‘음식(먹이)의 산’입니다. 또한 2절의 “장막(Soke)”은 우리가 생각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막(聖幕, tabernacle, 히브리어: mishkan)’이 아닙니다. ‘짐승의 서식지 혹은 둥지 등’을 의미합니다. 특히 사자를 비롯한 맹수들이 사는 굴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사자의 용맹(?)’으로 비유될 수 있는 하나님의 강력함을 나타낸 것이 맞습니다. 이 땅의 그 어떤 강한 대상도 하나님께서 약탈하듯 물리치고, 그들의 교만과 패역함을 무너뜨리신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4. 그러나, 진짜 하나님의 먹이가 무엇일까요? 참 엉뚱한(?) 생각이지만, 하나님은 무엇을 만났을 때, 무엇을 향하여 사자처럼 달려드실까요? 네, 그것은 저와 여러분의 죄악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악을 토해 놓으면 달려들어 불태우십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을 위협하여 회개하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망할 까봐 겁나서 종교 생활하도록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너의 죄를 대신해서 이미 내 아들 예수가 죽었다. 그것을 믿고, 내 앞에 나와 내놓아야 산다. 나의 먹이는 네가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토해 놓은 모든 것들이다.”라고 애타게, 목놓아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0절의 “노여움”은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 속에 내재한 ‘분노의 감정’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싫어 버린 인간의 본성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를 하나님을 향한 ‘반역의지’로 사용하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반역’에 묶여 진정한 ‘자유’를 버린 어리석은 우리를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죄와 사망’에서 벗어난 ‘완전한 자유’를 주셨습니다.

더 이상 그것에 묶어 있지 마십시오! 저와 여러분이 오늘을 살아내는 능력, 오늘을 이기는 능력은 이런 나를 향한 하나님의 끈질기고 강력한 십자가 사랑인 줄 믿습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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