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골로새서 3장 1~11절
1. 오늘 본문은 적어도 2장 20절부터 연결해서 읽는 것이 좋습니다. 2장 20절 ~ 3장 4절이 한 단락, 5~11절이 또 한 단락입니다.
앞의 내용과 연결하는 접속사 ‘그러므로(헬라어:oun)’로 이어집니다. 즉, ‘앞의 내용이 진리와 생명으로 믿어진다면, 그것에 동의한다면, 당연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좀 다른 표현으로 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이 진짜 소망이라면… 옛사람(범죄한 자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고, 새사람을 입고 산다면… 절대 그렇게 살수 없습니다!”라는 것이 ‘그러므로’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2. 제 개인적으로는 성탄절을 지내는 동안, 골로새서를 묵상하면서 “그러므로,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가? ‘위의 것(2절)’에 대한 소망이 얼마나 간절한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 그렇게 얻은 생명(3~4절)’에 대한 참 목마름이 있는가?”라는 스스로의 질문을 참 많이 했습니다. (물론, 일반종교 혹은 철학 등에서 말하는 ‘자아성찰적 질문’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제 마음에 주시는 물음이었습니다.)
‘골로새서’를 가까이 두고 읽었던 ‘성탄절 기간’이 새로웠습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그러므로”로 연결되어 제 삶을 다시 돌아보게 했습니다.
3. 그렇게 ‘로마제국(황제)’이라는 ‘눈에 보이는 것’의 정점을 경험하며 살았던 2,000년 전 ‘그들, 초대교회 성도들’을 떠올렸습니다.
‘보이는 것의 정점’에서 ‘보이지 않는 것의 정점’인 ‘위의 것, 하늘에 쌓아 둔(약속된, 지정된)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은 ‘죽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옛사람(내 자아)’은 십자가에서 죽고 ‘새사람(예수 그리스도)’으로 옷 입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입니다(2~10절)!
묵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를 붙잡고 고민해야 합니다.
내가 여전히 ‘땅의 것’을 바라고, 취하고, 엎어져 있다면…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는 것이고, 옛사람이 죽지 않았다면, 그리스도의 생명(새사람)이 내 안에 없다는 것이라는 두려움 섞인 결론에 앞에 서 봐야 합니다.
4. 물론, 이것을 가지고 ‘단순히 구원 받았느냐, 못 받았느냐’를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우리에게 회복되어야 할‘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순전함, 그 분의 생명에 대한 순수함’입니다.
‘순전(純全)’하다는 것은 ‘perfection’과 ‘pure’를 모두 담고 있는 단어입니다. 헬라어는 ‘eilikrineia’입니다. ‘아무것도 섞인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딱 하나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와 기독교인들의 문제가 이것입니다. 예수님 외에 덕지덕지 붙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지저분할 정도로 곁가지가 많습니다. 완벽할 수 없어도 할 수 있는 대로 껍데기를 깎아내고, 잘라내는 사람도 드물고, 교회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바보 같을 정도로 ‘예수님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생각하는 사람과 교회’가 그리울 지경입니다.
5. 그냥 그렇게 자기도 모르게 세상의 흐름 따라가는 교회가 되면 안 됩니다. 그냥 그렇게 모두가 걸어가는 비슷한 길로 인생의 발걸음을 옮기면 안 됩니다.
“십자가에서 살든지 죽든지!” 한가지만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살기 위해 나에 대해 죽는 것!”을 택하든지 아니면, 그 반대! “나에 대해 살기 위해 예수를 이용하는 것!”을 택하든지 결정해야 합니다.
쉬운 선택이 아닙니다. 그래서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은혜는 이럴 때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얻고 싶고, 이루고 싶은 어떤 대단하고 불가능한 것에 임하는 초월적 능력’은 성경이 말씀하는 ‘은혜’가 아닙니다. 속된 말로 ‘재수 좋은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되는(아니, 인간은 절대 하기 싫은) ‘범죄한 자아를 죽이는 것’을 위해 ‘은혜’가 필요합니다. 네, ‘십자가의 은혜’ 외에는 이것이 불가능합니다.
6. 오늘 말씀을 천천히 읽으며… 이런 마음의 그림을 그리며… 기도했습니다. “아직 남아 있구나! 진정으로 나의 십자가를 유일한 소망으로 생각하는 교회, 하늘에 있는 나를 소망으로 생각하는 성도가 있구나!”라며 예수님께서 ‘뉴저지주님의교회’와 우리를 향해 감격하시길 기도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예수 그리스도)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기쁘고, 행복한 저와 여러분 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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