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골로새서 1장 1~14절
1. ‘빌레몬서’에 이어 ‘골로새서’를 살펴봅니다. 두 편지의 연관성이 깊습니다. 그런 점을 생각하며 읽으면 또 새로운 감동이 있을 것입니다.
‘골로새서’는 사도 바울이 가택연금(家宅軟禁, house arrest)상태에서 기록한 4개의 편지(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중 하나입니다.
바울의 투옥생활은 크게 두 번이었습니다. 첫번째는 가택연금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비교적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었습니다. 두번째는 박해가 더 심해지면서 사형을 앞두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감옥생활을 했던 것으로 봅니다.
2. 사도 바울에게 당시의 모든 그리스도인의 공동체(교회)는 소중했습니다. 자신을 통해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신 그리스도인의 모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열매였습니다.
그 중에서 좀 더 특별한 교회가 있었습니다. ‘골로새(오늘날 터키 내륙지역의 도시)’에 생겨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골로새 교회)는 말 그대로 기적과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가 직접 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에베소’에 있을 때 ‘골로새’ 출신의 ‘에바브라(7절)’를 통해 세워진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3. 여러분이 2,000년 전 ‘사도 바울’이라고 상상해보십시오. 어느 날, 우연 같은 필연으로 접한 ‘골로새 교회’의 소식은 기쁨, 감격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밤을 새워 그 소식을 가져온 사람(‘에바브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과 이야기를 나눴을 것입니다. 그 중에는 안타까운 소식도 있었습니다. 당시 ‘골로새 교회’를 비롯한 초대교회에는 로마 제국에 의한 박해의 먹구름과 각 종 이단(異端, heresy)의 유혹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형태가 다를 뿐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세상의 박해와 유혹은 멈추지 않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육체를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그런 박해와 유혹에 우리는 흔들립니다.
4. 그래서 ‘골로새서’에 이런 부제목을 붙여볼 수 있습니다. ‘제국과 천국’입니다. (실제 이런 책 제목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의 권세가 눈에 보이는 것으로 드러난 것이 ‘로마제국(황제의 나라)’이었습니다. 그것과 정반대의 개념이 바로 ‘천국(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좀 성격이 다릅니다. 왜냐면, 세상(마귀 사탄)이 보여준 ‘로마제국(황제)’은 화려함과 위대함의 극치였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그대로 보여주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초라하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예수님’을 통해, 그 분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드러났습니다.
5. 인간의 단어로 표현되는 화려함, 위대함, 대단함 따위로 설명이 안 되는 ‘십자가의 깊이, 예수님 사랑의 넓이’를 볼 수 없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그래서 놀랐습니다. ‘골로새 교회’가 그래서 놀라웠습니다. 자신이 직접 가서 전하지도 않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 초라함(?)에 이끌린 그들이 너무 귀했습니다.
그러니, 기도가 터져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흐름이 그렇습니다. 기도가 폭포수 같이 흘러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1장 3~8절 속에는 기적같은 골로새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감사와 감격이 잘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9~12절은 기도의 내용입니다. ‘골로새 교회’의 소식을 듣자마자 기도했던, 아니 기도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 줄줄 적혀 있습니다.
(저도 이런 경험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순전한 마음, 위로부터 임하는 그 마음이 있는 분들을 만나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부럽기까지 합니다. 이런 것이 진짜 ‘축복기도’입니다.)
6. ‘성탄절’입니다. 5절의 말씀처럼 저와 여러분의 소망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늘’입니다. 물론, 여기서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쌓아 둔…”이라는 번역 때문에 엉뚱한 것을 상상하시는 분은 없을 것으로 믿습니다. “쌓아 둔”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apokeimai’는 어떤 것을 ‘쌓고, 축적하고, 모아두고, 저장하고, 저축하는 등’의 의미가 아닙니다. ‘약속된, 정해진, 지정된’이라는 뜻입니다.
네, 저와 여러분에게 약속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땅의 생명이 다하는 날 우리에게 정해진 것은 ‘예수님 만나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런 종교생활에서 벗어날 때가 됐습니다. ‘하늘에 지정된(쌓아 둔?)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용해 땅에 뭔가를 쌓으려는 생각을 버릴 때가 됐습니다. 심지어 땅의 것들이 ‘상급(인간이 이해하는 수준의 상급)’이라는 이름으로 하늘에까지 연결될 것이라는 착각에서 떠날 때가 됐습니다.
나에게 ‘약속된, 지정된, 정해진’ 유일한 소망, 진정한 소망이신 예수님 때문에 행복하고, 감사하고, 감격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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