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11월 5일 2020년 목요일 묵상

작성자 사진: Hyung YunHyung Yun

본문: 역대하 5장 1~14절

1. 오늘 본문 1절에서 ‘성전 건축’ 후 ‘성전 기구의 제작과 배치’가 마무리 되었음을 기록합니다. 2~10절은 ‘언약궤’를 성전으로 옮겨온 기록입니다. 11~14절은 하나님의 영광의 상징인 구름이 성전에 가득한 것에 대한 기록입니다.

사실상 오늘 본문인 ‘역대하 5장 2절’부터 성전 봉헌식(5:2~7:22)이 거행됩니다. 성전 공사에 관한 기록(3:1~5:1)은 평행 본문인 ‘열왕기상 6~7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지만, ‘언약궤’의 운반을 비롯한 성전 봉헌 내용은 ‘역대하’에서 더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고, ‘역대하’ 자체에서도 성전 공사 기록에 비해 성전 봉헌 내용을 더 비중 있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그냥 무심하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작은 것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신 대속의 은혜’의 본질을 잊어버렸기 때문임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 특히 자녀세대에게 자신들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당부입니다.

이제는 ‘역대기’의 기록목적을 ‘종교적 민족적 자긍심 고취’라는 단편적 이해에서 벗어나야 할 때입니다. 비록 스룹바벨 성전이 초라해 보이지만, 과거 우리 조상 솔로몬이 지은 성전이 이렇게 어마어마했음을 알려주기 위해 기록했다는 식의 부끄러운 해석을 멀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도 가진 것으로 은근히 자랑하는 사람을 좋게 평가하지 않는데,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은 어떻겠습니까? 제발, 하나님의 영광으로 포장된 은근한 종교 자랑, 축복 자랑을 교회도 개인도 멈춰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와 성도들이 당하는 비방을 멈출 수 있습니다. 그 비방으로 인해 십자가 복음이 평가절하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2. 오늘 본문에서 집중적으로 또 조심해서 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11~14절입니다. 솔로몬 성전에 임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성전을 건축하고, 언약궤를 옮기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영광으로 임재 하셨다.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의 상징인 구름이 가득했다.’, ‘구름이 가득한 것을 보니, 하나님께서 성전 봉헌을 받으셨다. 기뻐하셨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하나님께서 성전 봉헌을 받으셨다. 기뻐하셨다.’는 기록은 성경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성전 건물을 드리는 것’을 받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은 ‘죄에 대한 인정과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이 대속의 은혜를 붙들고 속죄의 제사를 드릴 때, 자신의 죄악을 고백하고 내어놓는 것을 받으십니다. 그것만 기뻐합니다.

엄격히 말하면 ‘봉헌(奉獻, offering)’ 즉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은 ‘나의 죄’대신 드려진 ‘대속의 제물’뿐입니다. 네,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물이 되신 예수님만이 하나님께 드려진 것, 봉헌된 것입니다.


3. 그럼, 13~14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여호와의 영광과 임재의 상징인 구름이 가득 찬 것을 어떻게 봐야 합니까?

크게 두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첫째, ‘진짜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이냐?’입니다. (이미 알고 계실 것입니다. 몇 차례 말씀드렸습니다.) 진정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은 ‘죄의 해결’입니다. ‘죄’에 대하여 통렬한 반성과 회개를 한 ‘인간’이 자기가 죄의 결과인 죽음을 맞이하지 않고, ‘대속의 제물’을 드리는 것을 통해 ‘죄 문제’를 해결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궁극에는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제물 삼으신 것이 진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 ‘영광’입니다.

그럼, 두번째가 무엇일까요? ‘여호와의 영광과 임재의 상징인 구름’이 의미하는 성경적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가려주시는 은혜’입니다. ‘가려주시는 은혜’를 통해 죄인의 죄악이 ‘가려지는 은혜’입니다. 바로, 이 ‘가려주시는 은혜’를 잊으니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목이 곧아집니다. 자기가 진짜 잘난 줄 압니다. 심지어 겸손한 줄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칭의(稱義)’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칭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에 근거해서 죄인을 의롭다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선포입니다. 즉, ‘예수님 때문에 의롭다 여김을 받는 것’일 뿐입니다.

칭의 받은 저와 여러분… 우리 잠시라도 ‘스스로를 돌아봅시다.’ 11절의 기록처럼 스스로 정결케 하기 위해 내 심령을 성령의 빛으로 비춰봅시다.

빛이신 성령께서 내 안에 임하셨다면 내가 안 보일 수가 없습니다. 교만하여 높아진 내 심령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런 내 모습이 지긋지긋하지 않다면, 성령의 비추심을 경험한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성부 하나님의 사랑, 성령의 인도하심을 힘입은 사람은 죄악 된 자기 실존과 본성이 들킬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껍데기를 벗고, 성령의 정결케 하심과 비춰 주심의 은혜로 나아가게 되는 줄 믿습니다!


지민철 목사


조회수 13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Comments


© 2017 My Father's Church of NJ.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