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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일 2020년 화요일 묵상

작성자 사진: Hyung YunHyung Yun

본문: 역대하 3장 1~17절


1. 역대하 3장은 ‘솔로몬 성전’의 외형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기록합니다. 성전이 지어진 장소와 건축물로의 성전의 규모와 화려함이 기록됩니다.

이 성경의 기록은 그저 성전이라는 건축물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이런 질문을 가지고 읽어야 합니다. “정말 저렇게까지 화려하게 지을 이유가 있었을까? 금을 덕지덕지 발라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라는 생각의 물음표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이들을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니 최고의 것으로 드려야 한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받은 축복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솔로몬 성전의 설계도는 다윗이 하나님께 영감을 받아 솔로몬에게 전한 것이다. 등등” 어떻게 하건 ‘솔로몬 성전의 완전무결함’을 강조합니다.

역대상 28장 10~19절을 가만히 읽어보십시오. 다윗이 준 설계도와 솔로몬이 지은 성전의 크기가 정말 같은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특히, 금으로 제작해야 하는 것은 ‘제사에 사용하는 기구’였습니다. 오늘 본문 4~10절의 기록처럼 ‘순금’으로 온 벽면을 입힐 필요는 없었습니다. 보석으로 성전을 꾸며 화려하게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네, 순금으로 입히고, 보석으로 치장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전의 진짜 기능이 무엇인지가 중요합니다. 성전이 왜 있어야하는 지가 중요합니다. 성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2.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15~17절에 기록된 ‘두 기둥’을 잘 생각해야 합니다. ‘두 기둥(야긴과 보아스)’를 무턱대고 ‘하나님의 영광의 상징 혹은 성전을 떠받드는 기둥’이라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 어떤 목회자가 교회의 중책을 맡은 사람에게 “성전을 떠받드는 ‘야긴과 보아스’같이 쓰임 받게 해주시옵소서”라며 기도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기억을 좀 더듬어 보십시오. 제가 기억하기로 약 2년 전, ‘열왕기상’을 살펴볼 때 함께 나눴던 말씀입니다.

네, ‘두 기둥(야긴과 보아스)’는 다윗의 설계도에 없었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26장에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성막’에는 더더욱 없었던 것입니다.

과거에는 저도 ‘성전의 두 기둥’처럼 쓰임 받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걸 굳이 왜 세웠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물론, ‘야긴과 보아스’를 비방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들처럼 ‘사탄의 상징, 이교도의 상징’이니 이런 소리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성전에 세워진 건축물들의 화려함과 거대함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자는 것입니다. 성전의 본질을 놓치지 말자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드리는 대속의 제사가 필요한 인간의 죄성을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드리는 속죄의 제사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망각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3. 저는 3절의 “옛날에 쓰던 자로…”라는 말이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역대하’를 기록한 에스라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70년 간 바벨론에서 살았던 ‘남유다 사람들’ 그 중에서도2세대들은 ‘남유다’의 도량형이 아니라, ‘바벨론’의 도량형에 익숙했을 것입니다. (‘Inch와 Cm’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대제국이었던 바벨론의 건축물과 건축 기술’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벨론 제국의 성, 공중정원, 지구라트(Ziguurat) 등’입니다. 분명, 바벨론의 도량형은 단위가 더 크고 정밀했을 것입니다.

이런 배경을 생각해본다면 3절의 “옛날에 쓰던 자로…”라고 말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것이 정말 ‘솔로몬 성전’이 얼마나 크고 웅장한 것인지를 강조하기 위해 기록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한 것일 뿐입니다.

어쩌면 이 짧은 한 마디에 ‘에스라’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너희 조상들, 바로 우리가 솔로몬 성전의 외형에 취하고, 순금으로 입힌 화려함에 취해서 ‘성전을 허락해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잊었었다. 규모와 화려함으로는 바벨론의 건축물, 애굽의 피라미드와 비교도 할 수 없이 작은 것이었는데, 우물 안 개구리처럼 착각했었다. 다시 짓는 ‘스룹바벨 성전’을 바라볼 때 ‘바벨론의 그것’과 비교하지 말아라. 그곳에서 드릴 ‘대속의 제사, 그 은혜를 베풀어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집중 하거라.”는 ‘에스라’를 통한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이 녹아 있습니다.

성전이라는 건축물의 화려함과 규모에 마음이 빼앗기면 ‘대속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의 마음’을 짓밟는 것입니다.

1절을 꼭 붙들고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모리아 산에서 ‘이삭’ 대신 드릴 ‘어린 양’을 준비하신 하나님의 마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다윗이 드린 속죄의 제사를 기뻐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하게 될 줄 믿습니다.

‘겉을 둘러싼 껍데기’에 빼앗긴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하게 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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