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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0일 2021년 수요일 묵상

작성자 사진: Hyung YunHyung Yun

본문: 사사기 5장 1~18절


1. 오늘 본문인 ‘사사기 5장’은 서술적 기법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시적 기법으로 기록한 노래입니다. (당연히 우리가 생각하는 멜로디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뒤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한 ‘모세의 노래(출애굽기 15장)’이 떠오릅니다.

‘사사기 5장’은 시의 특성상 함축성이 매우 강합니다. 한 절 한 절의 뜻을 다 이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당시를 살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면, 이 본문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신 놀라운 일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인간의 언어 또한 그 한계가 명확합니다. 거기에 고대 히브리어라는 언어적 난해성이 더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사기 5장’은 탁월한 문학성과 심오한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사사기 5장’을 읽을 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드보라, 바락, 야엘’ 같은 인간 영웅들을 칭송하고, ‘시스라’같은 하나님의 대적을 조롱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내일 읽으실 본문 속에 ‘시스라의 어머니’가 등장하는 것은 좀 과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2. 하지만, 이런 것은 말 그대로 ‘표면적 해석’입니다. ‘사사기 5장’ 속에 단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는지 구체적인 단서가 있습니다.

대체 이스라엘은 어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 어떤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었는지가 드러납니다.

4~5절, 그리고 (내일 본문이지만) 20~21절에 주목해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스라의 군대를 격파하실 때 사용하신 것은 ‘비와 번개’였습니다. 전투가 벌어진 ‘기손강’은 평상시에는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wadi)입니다. 비가 쏟아지면 금방 물이 불어나 질퍽해집니다. 심하면 급류가 생겨 모든 것이 떠내려 갑니다. 아무리 기동성이 뛰어나고, 강한 철병거라도 진흙탕이 된 기손강에서는 기동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시스라와 그의 군대는 걸어서 도망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4장 15절).


3. 여기서 또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4장 15절의 기록이 독특합니다. “여호와께서 바락 앞에서 시스라와 그의 모든 병거와 그의 온 군대를 칼날로 혼란에 빠지게 하시매…”라고 기록합니다.

사사기의 다른 승리의 기록들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시매…”라고 기록하는 것에 반하여 여기에서는 ‘여호화 하나님께서 친히 시스라를 물리친 것’으로 표현됩니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8절의 “이스라엘 사만 명 중에 방패와 창이 보였던가”입니다. 네, 이스라엘은 비무장이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전투와 달리 칼 한 번 휘두르지 않고 이겼습니다. 인간의 그 어떤 노력과 힘도 들어가지 않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에 의한 구원, 그 승리를 누린 것입니다.

네, ‘홍해 사건’과 같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그렇게 구원 받은 모세와 이스라엘의 입에서는 ‘감사와 감격의 찬양’ 외에는 흘러나올 것이 없었습니다. ‘모세의 노래(출15)’가 흘러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4. 그런데 어떻습니까? ‘여호수아, 사사기’의 역사를 지나는 동안 ‘이스라엘’은 변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대한 영적 의미는 잊고, 말 그대로 ‘땅’에 영혼을 빼앗겼습니다. 그 땅에서 누리는 것들에 마음이 팔렸습니다.

‘사사기’의 전반부, 그 시작에서 하나님은 다시 ‘출애굽’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제발, ‘출애굽’을 잊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말한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 그러나 말만 할 뿐이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 조차 너희의 의로움으로 악용할 뿐이다. 그러나, 난 다시 너희를 ‘전적인 나의 주권과 사랑’으로 구원한다. 너희에게 속는 것이 아니다. 나의 언약과 신실함 때문이다. 이것이 내 사랑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5. ‘시스라’도 ‘이스라엘’도 하나님 앞에서는 은혜와 긍휼이 필요한 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과도한 승리에 도취된 저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타고 다니며 뽐내는 병거, 그 위에서 내려서 걷는 것은 ‘십자가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자아를 만족시키기 위해 하나님도 이용하는 나의 존재를 깨닫는 것, 이런 내 자아를 완전히 버리는 것은 범죄한 인간은 못합니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기 싫어합니다.

그러나, ‘십자가 은혜’가 임하면! 거부할 수 없고, 저항할 수 없는 ‘십자가 은혜’가 임하면 됩니다. ‘십자가 은혜’를 받을 그 어떤 조건도 없는 나의 절망 앞에서 울고 있었을 뿐인데, 어느덧 나에게 임한 십자가 사랑의 강권적 은혜와 성령의 이끄심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힌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인간 스스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십자가 은혜’가 위로부터 쏟아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 은혜가 쏟아질 때 아파도 견딜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 은혜가 범죄한 내 본성을 철저히 녹여 버리길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도저히, 십자가 앞에 엎드려 이런 기도 없이 범죄한 제 자아를 이끌고 세상 앞에 설수 없습니다. 세상에 미혹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기도를 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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