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출애굽기 27장 1~21절
1. 오늘 본문은 ‘번제단 제작(1~8절) 성막 뜰 설치(9~19절), 성소 안의 등불 관리(20~21절)’에 관한 기록입니다.
제물을 불태우는 ‘번제단’은 ‘성막 뜰(마당)’에 놓아두는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그래서 이 두 시설에 관한 것을 연이어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단의 크기에 대해 가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많은 양의 제물을 한꺼번에 드릴 수 있는 크기는 아닙니다. 가장 큰 제물 중의 하나인 ‘소’를 한번에 태울 정도의 크기입니다.
또한 번제단의 기능은 완전히 불사르기에 적합하게 되어 있습니다. 3절의 도구들은 완전히 불탄 제물과 나무의 재를 치우는데 사용된 도구들입니다. (요리용 기구가 아닙니다.)
2. 이것을 가만히 묵상해보십시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만날 때 어떻게 만나길 원하시는 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을 직접, 일대일로 만나길 원하십니다. 한 영혼, 한 영혼이 하나님 앞에 서길 원하십니다.
인간의 연약함과 범죄함을 영혼 깊이 인정하며 믿음으로 제물을 가지고 나온 그 한 사람을 만나 주십니다.
성막의 뜰은 생각보다 넓습니다. 대략 11,200sqft(315평) 정도의 면적입니다. 그 크기에 비하면 가로세로 약 2.5m, 높이 1.5m의 번제단은 작은 것입니다.
머리 속으로 자신이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당사자라는 마음으로 성막 뜰의 번제단 앞에 섰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나의 죄 대신 드려진 제물이 각이 떠지고, 불에 타는 모습을 직접 보고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제대로 서있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진정으로 제사를 드린다면 마음에 임하는 영적 무게감에 어찌할 바를 모를 것입니다.
3. 하지만, 그런 두려운 제사로 끝이 아닙니다. 그 제사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속죄의 제사, 화목의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의 교제의 길, 만남의 길, 동행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물론, 구약시대에는 제사장만이 성막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제사를 드린 사람은 자기를 대신하여 물두멍에 손을 씻고 성소로 들어가는 제사장의 뒷모습을 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제사를 완성하신 이후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지성소로 나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브리서 10:19~20)
히브리서의 이 말씀을 묵상해보십시오. 두려움으로 제사장의 뒷모습만 바라보던 제사가 아닙니다. 두려움에 오금이 저려 벌벌 떨며 주저 앉아있었던 제사가 아닙니다.
4. 물론, 안타까운 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어놓으신 하나님과의 만남, 동행, 교제에 대한 감격이 너무 희미해진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안타까움이 큽니다.
그런데,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일까요? 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다시 만난 것에 대한 감격, 구원에 대한 감사가 흐려진 것일까요?
역설적이게도 두려움과 경외감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대규모의 축제 같은 예배를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찔리고, 아프고, 불편한 것이 싫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배는 기쁨과 감격, 감사가 가득한 축제가 맞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 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철저히 붙드는 영적 고뇌가 빠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찬양곡으로 흥겹게(?) 부르면 끝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과정 중의 일부로 지나가면 그만입니다.
그리고 앉아서 어떤 공기의 진동을 통해 고막이 울려 뇌로 인식되는 정보(?)를 듣습니다. 차마, 제 자신조차 설교 혹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민망합니다. 제 자신이 성경을 읽고 대할 때 시각적 자극으로 뇌에 신호가 전달되는 어떤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갈등 때문에 참 괴로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 우리 말씀 따라갑시다. 비록, 사람의 눈으로 성경을 읽지만, 성령께서 영혼의 눈을 밝혀 주시길 기도하며 읽어야 합니다.
저도 ‘사람의 생각을 설교라고 하는 것 아닌가? 정말,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음성인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없어, 힘이 들어도 성경을 따라 한 절 한절 함께 나눌 뿐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한 하나님 말씀으로 우리의 심령을 수술하십니다. 우리의 심령을 쪼개어 십자가 앞에 드리게 하십니다. 쪼개진 우리의 심령을 성령의 불로 태우시고,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성소, 그 깊은 곳으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오늘 하루도 이 놀라운 성령의 역사, 성령의 인도함 따라 십자가에 드려지는 삶을 기쁨으로 사시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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