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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9일 2020년 목요일 묵상

작성자 사진: Hyung YunHyung Yun

본문: 시편 37편 23~40절


1. 저와 여러분은 계속해서 ‘성경의 관점’으로 ‘의(義), 선(善), 악(惡), 죄(罪)’가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도 단순하게 멸망하는 결국 ‘멸망하는 악인, 선을 많이 베풀어 흥하는 의인’의 구도에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또 새겨봅시다. 성경이 말씀하는 ‘악과 죄’는 하나님을 싫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그 자체로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여 멸망 당할 운명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영원한 죽음에서 건져 주시겠다는 대속의 은혜를 거부한 것이 ‘악과 죄’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악과 죄’를 인간의 관점에서 ‘나쁜 짓’하는 수준에서 이해하면 낭패를 보게 됩니다. (물론, ‘나쁜 짓’은 절대 해서는 안 됩니다.)


2. 오늘 말씀에서 조심?해서 읽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23~31절입니다. (29절의 ‘의인이 땅을 차지한다’는 것은 어제 살펴보았습니다.)

먼저 23~24절을 보십시오. 이것이 어떤 내용입니까? ‘믿는 자’의 결국은 ‘만사형통’ 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세상사람들과 달리 뒤로 넘어지건 앞으로 자빠지건 하나님이 매트리스를 준비하신다’입니까?

23~24절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숙명과 운명’입니다. 하나님이라는 절대 최강의 신적 존재가 반드시 나를 보호하고 축복해준다는 식의 종교적 신념은 무속(巫俗)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23절의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셨다’는 것은 ‘죄인을 향해 대속의 은혜의 길’을 열어놓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멸망 당할 죄인에게 십자가를 통해 생명과 소망의 길을 열어 주셨음을 의미합니다.

24절은 여전히 남은 죄성과 인간의 한계로 넘어지지만, 끝까지 그리고 매일 매순간 십자가에서 돌이켜 회개함으로 마침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23~24절은 막연한 ‘숙명(predetermination)과 운명(fatalism)’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에게만 허락된 ‘예정(Predestination)’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학적 설명을 길게 드릴 수 없습니다만, 짧게 설명하면 성경을 통해 드러난 ‘예정론’은 인간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믿고, 영접하고, 결단하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이 자유의지로 결단한 것을 자기 노력 혹은 공로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십자가 대속의 은혜는 삼위일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구원’에 대한 그 어떤 ‘인간의 공로’도 주장할 수 없습니다.)


3. 두번째 주의해서 봐야할 말씀은 25~27절입니다. 이 부분은 정말이지 ‘공로신앙’으로 해석하기 딱 좋습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를 단순하게 적용합니다.

이 말씀은 ‘자녀들(후손들)’이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해 ‘종교적 열심, 베푸는 삶, 선을 행하는 삶’을 살도록 권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25절은 3절과 연결하여 봐야 합니다. “걸식함”을 원어에 가깝게 해석하면 ‘떡을 갈망함, 찾으러 다님, 구걸함’입니다. 즉,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떡을 찾으러 다니는 것을 보지 못했다”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네, 하나님의 의로움, 바로 십자가 은혜에 붙들린 사람이 보여준 삶을 통해 그 자녀들도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26절의 ‘그(의인으로 여김 받는 자 즉, 성도)가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준 것’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4. 또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십자가 복음’에 초점을 맞추어 말씀을 해석하면, 경우에 따라 ‘섬기고, 베풀고, 돕는 삶’을 살지 않아도 되겠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마음이 든다면 더 위험한 사람입니다. 섬기고, 베풀고, 돕는 것을 통해 자신의 의를 내세우는 것만큼 잘못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누군가를 섬기고, 베풀고, 도울 수 있는 이유는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며, 생명 주신 예수님 때문이며, 그럴 수 없는 자에게 감동 주신 성령의 은혜일 뿐입니다.

사람의 성품, 본성, 본능으로 행한 것은 그 어떤 것이든 십자가 은혜와 아무 상관없습니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것일 뿐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우리는 “나는 의인인가, 악인인가?”를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기 보다 “주님, 내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히면 의인이라 여김 받을 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악인입니다.”라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나를 냉정해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사랑하는 사람이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을 거리로 삼는 것이 진짜 축복입니다. 그래서 내가 ‘십자가 은혜’만을 진정한 ‘생명의 떡, 영적 먹거리’ 삼아야 합니다.

말씀을 골라 먹는 ‘영적 편식’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모든 말씀을 곱씹으십시오. 특히 아프고 찔리는 말씀일수록 더 음미하고, 흡수해야 합니다. 이것이 ‘생명의 떡’을 제대로 섭취하는 길인 줄 믿습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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