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4일 2020년 수요일 묵상
- Hyung Yun
- 2020년 10월 14일
- 2분 분량
본문: 시편 24편 1~10절
1. 남은 10월은 시편(24~39편)을 살펴볼 것입니다. 오늘 말씀 ‘시편 24편’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노래(시)입니다.
1~2절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입니다. 3~6절은 이런 ‘하나님을 예배하기에 합당한 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과 대답입니다. 7~10절은 다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찬양입니다.
본문의 배경을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다윗의 시편인 것으로 보았을 대, 이스라엘 군대가 전쟁에서 승리한 뒤 귀환할 때 지은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특히, 7~10절은 전쟁에서 승리한 뒤 군사들과 함께 출전했던 법궤가 성전으로 다시 들어가는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2. 하나님의 능력, 영광,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시편을 읽을 때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그 영광, 능력, 위대함을 힘입어 내가 위대해지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오늘 본문 3절을 단편적으로 이해하여 ‘여호와의 산, 거룩한 곳’ 을 ‘세상 관점의 높은 자리’로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4절은 인간의 노력과 공로에 근거한 종교적, 윤리적 노력으로 ‘최고의 신(神)이 존재하는 공간(여호와의 산)’에 설 수 있는 조건이 아닙니다.
3절의 ‘여호와의 산’은 ‘성전’을 의미합니다. ‘성전’에 서야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죄인에게 베푸신 ‘대속의 은혜’를 붙들기 위함 입니다.
4절의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하고, 뜻을 허탄한 것에 두지 않으며, 거짓 맹세를 하지 않는 자’는 ‘사람의 노력, 사람의 정직함, 사람의 신념, 사람의 단호함 등’을 의지하여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가지 않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5절의 ‘여호와 하나님의 의로움’을 붙드는 것입니다. 인간의 종교적 노력에 의한 구원이 아니라, 위로부터 베풀어 주신 온전한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의 예표인 ‘속죄의 제사, 대속의 제물을 드리는 제사’를 믿고 의지하며 나가는 것입니다.
3. 이런 마음으로 6절을 묵상하십시오.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라는 표현속에 스며들어 있는 간절함과 낮은 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찾는 족속’은 ‘이스라엘 민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족속’으로 번역된 ‘도르(dore)’는 ‘세대(generation)’으로 번역하는 것이 원어에 더 가깝습니다.
즉, ‘지금, 여호와의 대속의 은혜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이방인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지금 내게 허락된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길을 붙드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찾는’으로 번역된 ‘다라쉬(darash)’는 ‘간절히, 애타게 찾는 것’입니다. 갈증으로 입술이 바싹 타들어가는 사람이 물을 찾는 것처럼, 배고픈 아기가 어미의 젖을 찾는 것처럼 하나님이 베푸신 대속의 은혜 없으면 죽는다는 것을 절감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구약의 배경’, ‘고대 왕이 다스리던 시대적 배경’에서 ‘얼굴을 구하는 것’은 특별한 은총을 입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최고의 존재(왕)의 얼굴을 볼 수 있으려면 왕의 허락이 있어야만 합니다. 왕의 긍휼을 입어야만 가능했습니다.
다윗은 언제나 이런 마음이었습니다. 자신이 왕이었지만, 하나님의 긍휼 앞에서는 가장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처럼 엎드렸습니다. ‘처럼’이라는 말도 맞지 않습니다.
한 순간이라도 하나님에게 붙들려 있지 않으면 ‘난 죽는다’는 것을 절감한 사람입니다. 실제 그의 삶에서 하나님을 멀리했다가 겪은 참담한 일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참 간사합니다. 잘 되는 것은 그냥 잘하면 되는 줄 압니다. 내가 하나님을 찾는 몇 가지 일을 가지고, ‘난 십자가 앞에 내려놓았다. 하나님께 맡겼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자기 맘대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다스리고, 통제하며 살아갑니다.
까다롭고, 민감하고, 세밀하게 십자가 앞에서 자기를 돌아봐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들이댄 엄격한 잣대를 거두고, 십자가를 통해 나 스스로를 더욱 예민하게 걸러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감히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가시 면류관 쓰신 예수님의 얼굴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음을 믿고, 오늘도 변함없이 십자가에 나를 못 박게 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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