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고린도후서 12장 14~21절
1. 적어도 10장부터 이어지는 사도 바울의 고백을 읽으면서 ‘고린도 교인들과 사도 바울 사이의 오해가 정말 깊었구나’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죽했으면, 11장 23절 이하부터 12장 10절에 기록된 십자가 복음을 전하다 당한 처참한 고난과 핍박, 신비주의라는 비방을 받을 만한 경험까지 말했을까라고 생각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경험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말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부득이한 선택이었습니다. 말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알지만, 궁여지책으로 택한 것이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신비주의와 지성주의로 포장된 ‘거짓교사들’의 유혹에 넘어간 상태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그 대속의 은혜만을 전하는 사도 바울이 답답했습니다. 재미도 없었습니다. 뭔가 자신들의 종교심, 도덕심, 의로움 따위를 충족시켜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거짓교사들’은 종교적 신비감, 윤리적 충족감, 영적 황홀감을 적당해 채워주었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비하면 정말 맛깔나는 진미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밋밋한 것 같은 ‘어머니의 집밥’ 같았다면, ‘거짓교사들’이 전한 내용은 화려한 ‘종교뷔페’였습니다.
그런 것에 마음을 빼앗겨 버린 ‘고린도 교인들’을 위해, 정말 어쩔 수 없이, 고린도 교인들의 영적 수준에 맞춰서 자신의 고생과 체험을 말한 것입니다. (그래야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제발, 종교인들의 간증 따위에 마음을 빼앗기면 안 됩니다. 뭔가 믿은 대가로 이런 저런 일이 일어났다는 식의 드라마틱한 이야기에 솔깃하면 안 됩니다. 영적 체험이라는 이름으로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니는 종교 스토리에 속으면 안 됩니다.
만약, 진짜 성령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영적 체험을 한 사람이 있다면, 입을 다뭅니다. 죄인인 내가 하늘의 일을 본 것이 너무 두려워 입을 열 수 없습니다. 십자가 구원을 계획하시고, 실행하시고, 완성하신 영적 무게감에 짓눌려 감히 고개 들 수 없습니다.
2. 오늘 읽으신 본문을 다시 곱씹어보면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내고, 자주 방문하려 한 것에 대한 변론이 아닙니다.
‘나도 이런 대단한 간증이 있는 사람이야.’라고 말한 뒤, 고린도 교인들의 마음이 좀 움직였을 때, 자신의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19절)
오늘 본문 14~19절을 통해 사도 바울이 얼마나 쓸데없는 오해에 휘말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당시 세워진 초대교회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교회였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교회의 중심이었습니다. 고린도는 고마제국의 상업, 무역, 경제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러니 ‘고린도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관심은 엉뚱한 오해를 살 수 있었습니다. ‘연보 혹은 재정’의 도움을 받기 위해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방문하려고 시도했다는 의심을 받기 쉬웠을 것입니다.
실제, 거짓교사들은 이런 것을 악용하였고, 이런 애매한 상황을 이용하여 고린도 교인들과 사도 바울 사이를 이간질했습니다. (16절)
3. 바울은 이런 상황에서 물러서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말합니다. 자신이 직접 여행 경비를 충당하여 그들에 폐를 끼치지 않을 것을 말합니다. 재물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연보’라는 것을 다시 강조합니다. (14절)
고린도 교인들이 경험한 사도 바울에 대하여 기억나게 합니다. ‘부당한 이득을 취하지 않았던 그의 모습’을 상기시킵니다. (17~18절)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말을 합니다. 19절 하반절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입니다. 이것은 ‘나의 결백을 하나님이 보증해 주신다.’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붙들린 바 되어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으면 나 역시 종교로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몰랐을 때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젠 그리스도의 십자가 붙들고 감히 하나님 앞에서 살아갑니다.”라는 영혼의 고백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글자 속에 담긴 심령이 느껴집니다. 한정된 표현 속에 녹아 있는 깊은 영적 흐름을 발견하게 됩니다. 네, 십자가에 못 박힌 기록자의 전인격이 보이고, 그를 붙들고 있는 예수님의 사랑이 보입니다.
우리의 영혼과 전인격, 삶의 전반이 하나님 말씀을 통해 십자가로 인도함 받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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