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복음 7장 25~36절
1. ‘요한복음 7장’은 ‘초막절(Feast of Tabernacles)’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사건들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숙곳(sukkot)’이라 불리는 ‘초막절’은 ‘장막절(帳幕節)’ 또는 ‘수장절(收藏節)’이라고도 불립니다. 한 해의 수확을 창고에 저장합니다. 일종의 ‘추수감사절’의 의미도 가집니다.
무엇보다 ‘대속죄일(Day of Atonement) 이후 5일이 지나면 시작되기 때문에 ‘초막절’ 전후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장 기쁘고, 풍성한 시기입니다.
이때 7일 동안 천막에 거하면서 출애굽 당시 광야 40년 생활을 기억합니다. 구름기둥, 불기둥, 만나와 메추라기, 반석의 물을 통해 지키시고, 보호하신 은혜를 기억합니다. (레위기 23장 34~43절 참고)
2. 말 그대로 ‘인산인해(人山人海)’인 예루살렘에 가신 예수님을 생각해보십시오.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그들의 수군거림, 환호, 비방 등등에 휩싸인 예수님을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은 사람들이 생각한 그런 ‘구원자(메시야, 그리스도)’였을까요? 그들의 눈에 예수님은 어떻게 비쳤을까요?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각 자가 원하는 구원을 주는 어떤 존재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자기 기준에 맞지 않는 구원자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었습니다.
오늘 말씀에도 그런 사람들의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종교지도자 그룹(대제자상, 바리새인, 서기관 등)만 예수님을 싫어한 것이 아닙니다.
25~27절을 보면 일반 대중의 심리상태가 잘 드러납니다. 여기에서 “어떤 사람(25절)”은 “당국자들(종교권력자들, 지배자들)” 외에 예수님을 비아냥 거린 일반인들을 말합니다.
25절 하반절에서 27절까지을 읽어보면 혼동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에게 호의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드러나게”라고 번역된 ‘parresia’는 ‘공개적으로, 자유롭게’라는 뜻입니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라는 말은 ‘당국자들’를 향한 조롱입니다.
원문에서는 확실하지 않는 추론 앞에 붙이는 헬라어 ‘mepote’로 시작합니다. 한글로 말하면 ‘설마 ~아니겠지?’라는 뜻입니다. “설마 당국자들이 이 사람(예수)를 그리스도로 생각한 건 아니겠지?”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어떤 사람”은 27절에서 증거(?)를 댑니다. 진짜 그리스도는 어디서 오시는지 모르지만, 예수는 나사렛에서 온지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동시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추앙하는 줄 알고 두려워하는 ‘당국자들’에 대한 조롱이 섞여 있습니다.
3. 그러나, 그건 말 그대로 사람 생각입니다. 예수님을 눈으로 봐도, 말씀을 직접 들어도 소용없습니다. 알아서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 그 떡과 물고기(오병이어)를 입에 넣어도 자기 생각하고 싶은 대로 해석합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지금이 아니라, 성령이 그 심령에 임하실 때를 위해 말씀하십니다. 28~29절의 선포를 하십니다. ‘하나님의 보내심으로 오신 예수님,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예수님,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선포하십니다.
아직까지는 아무도 예수님을 건드릴 수 없습니다. “그의 때(30절)”,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승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33~36절).
35절을 보면, 여전히 자기 알아서 생각합니다. 물론, 맞는 말을 했습니다. 조롱과 비아냥으로 말했지만, 헬라인들에게 십자가 복음이 전해집니다. 예수의 영이신 성령의 임재로 회복된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십자가 복음이 전파됩니다.
4. 성경 말씀을 읽고, 대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아, 여전히 내 생각에서 하나님 말씀을 해석했구나…’라는 안타까움을 항상 가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성령 하나님은 25~27절의 ‘어떤 사람’같은 저를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35절에 헛소리(?)를 쏟아 놓는 그것도 잘난 척하며 쏟아 놓는 저를 가만히 두지 않으셨습니다.
당장은 못 알아듣는 것 같지만, “그의 때”에 깨닫게 하시기 위해 이 패역한 심령에 계속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알게 되었을 때, 부끄러움(?)마저도 은혜로 감싸주셨습니다.
내일 말씀에도 이어집니다. 자기 알아서 종교 행위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 어영부영 들뜬 마음으로 예루살렘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생명수’되신 자신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에 대해 여전히 알아서 생각하는 내가 결국에는 ‘예수님 없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 아니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전부입니다.’라고 항복하게 될 줄 믿습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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